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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15. 2024

오십의 식단

[오십의 기록] - 일상들

오십이 되니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내가 먹는 것이 나의 몸을 구성하고 내 몸이 움직이고 작동하도록 도우며 최대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그동안 먹었던 수많은 기름진 음식과 인공적인 식품들, 자극적이고 심지어 해로운 것들을 생각하면 내 몸이 그것들을 버틴 것이 대견하게 생각될 정도다. 

사실 오십이 되기 훨씬 전인 마흔 즈음부터 몸에서는 노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당시 둔감했던 나는 그저 예전같지 않음을 나이탓으로 돌리며 무엇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쁨을 핑계로 고기 구워 먹는 게 제일 편하다며 일주일에 서너번씩 삼겹살이며 목살이며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점심 식사는 언제나 흰쌀밥에 국이나 탕, 튀김, 고기, 국수, 분식 등을 돌아가면서 먹었고 식사 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겠다며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와 라떼나 달달한 음료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곤 했다. 저녁 외식은 역시나 고기가 빠질 수 없고 간혹 간단하게 먹자며 국수나 탕을 먹기 일쑤였다. 주말에는 치킨 배달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의 식단 그 어디에도 건강 식재료의 대명사이자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렌틸콩이나 콩류, 채소류, 견과류, 통곡류는 자리할 틈이 없었다. 지금 오십의 식단에서는 이러한 음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극과 극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삼겹살은 여전히 맛있고 순댓국은 영혼을 위로하며 콩나물국밥 한그릇에 행복해진다. 하지만 횟수가 줄었고 양이 줄었으며 욕망도 줄었다. 대신 양배추,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아보카도, 렌틸콩으로 만든 샐러드와 통곡물이 잔뜩 섞인 절반의 밥, 슴슴한 간에 채소를 잔뜩 넣어 만든 된장찌개를 꼭꼭 천천히 씹어 넘기다보니 식사 시간이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오십의 나의 식단을 공개해본다. 아침은 물 한잔을 시작으로 삶거나 구운 계란, 사과, 요거트, 견과류, 블루베리, 호두, 고구마 중에서 그날그날 손에 잡히는대로 두 세가지를 집어먹는다. 음료는 디카페인 커피나 차를 우려 마신다. 점심은 간편식 위주로 냉면이나 국수, 우동을 먹되 면과 국물의 양을 줄이고 간도 슴슴하게 한다. 되도록 샐러드를 곁들인다. 약간 배가 고픈 듯해도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을 먹기 때문에 견딜만 하다. 저녁은 살코기 위주의 고기, 생선, 두부, 계란 등 단백질 재료가 들어간 반찬 한가지와 된장찌개, 미역국, 소고기뭇국, 김치콩나물국 등 국물 반찬을 준비하고 올리브오일, 식초류, 소금, 후추, 강황가루나 마늘가루 등으로 만든 소스를 뿌린 샐러드, 이렇게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다. 그 때 그 때 멸치볶음, 나물, 김, 젓갈 등 한 두가지 반찬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 밥은 보리, 콩, 현미 등을 잔뜩 넣어 만든 뒤 반공기를 먹는다. 

조리법을 달리한 것도 언급해야겠다. 불이나 기름에 굽기보다는 물에 삶는 식으로 고기와 생선을 요리한다. 생선 요리를 할 때 기름이 튀기고 집 안에 냄새가 오래도록 배어 몸에는 좋다해도 자주 해먹기를 주저했었는데 기름이 아니라 물을 자작하게 부어 삶듯이 조리한다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눈이 번쩍 뜨이는 듯했다. '이거다!' 그 다음부터는 생선요리를 찜처럼 해먹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조리법도 훨씬 간편하고 냄새도 덜 나며 간도 슴슴해지고 몸에도 좋은 생선 요리가 식단에 더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역시나 관심이 있어야 변화가 생기는 법이다. 지금 먹는 것들이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그저 선택을 달리 했을 뿐이었다. 언제나 우리 옆에 있던 식재로였고 엄청나게 획기적인 조리법도 아니다. 단지 생각을 달리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닐 터. 나 자신 또한 오십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리 변했으니 말이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그런 것 같다. 몸이 변하면서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점검해보고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시기. 건강 진단의 기록들이 점차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고 노쇠와 퇴화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시기. 변화하지 않으면 그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시기. 그래서 나는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바꾸기로 했고 식단도 그 중 하나였다. 

물론 이렇게 바꾸기까지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절대 한번에 급격하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스케줄에 따라 차근차근 바꾼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에게 맞는 것을 찾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몸의 변화를 실감하다보니 어느 순간 정착이 되었다. 

아마도 이렇게 먹으면 맛없지 않느냐, 배고프지 않으냐 싶을 것이다. 놀랍게도 맛이 있고 배도 고프지 않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지고 뜨겁고 차갑고 등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향을 최대한 덮고 지우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어왔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무엇을 먹든지 사실 맛은 똑같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고 하듯이 눈과 입만을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이 좋은 재료든 나쁜 재료든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음식들을 맛있다고 먹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 즉 생으로 먹거나 삶아 먹으니 그 재료 안에 단맛은 물론 짠맛, 매운맛, 감칠맛까지 모두 있었다. 먹고 나서 뱃속도 한결 편안했다. 배가 고픈 것 같으면 그 때마다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을 조금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했더니 몸이 익숙해졌는지 배고픔도 점점 덜 느껴지게 되었다. 

혹자는 나이 들어 너무 마른 것도 보기 좋지 않다 할 것이다. 실제로 병치레를 하거나 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살집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이는 역시나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무엇이 좋은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무엇이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지, 자신의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에 적합한지 결국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질 문제다. 

그렇다면 얘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더 이상은 먹지 않는가. 물론 아니다. 외식도 하고 군것질도 하며 달달한 후식도 먹는다. 단지 그 횟수와 양이 줄었을 뿐이다. 그러고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무엇보다도 편안했다. 과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웃프다면 웃프다고나 할까. 

나에게 오십의 식단은 내 삶의 동력이자 내 몸의 구성이다. 그러다보니 아무 거나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너무도 다양해졌지만 그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것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것들을 또 다양하게 먹어봐야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비로소 먹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은 덤이다. 오십이 되니 이렇게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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