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록] - 일상들
또 하루 시작이다.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진다. 간 밤에 잠을 잘 잤든, 이러저러한 생각이나 몸의 마디가 쑤셔 뒤척이는 밤을 보냈든 어김이 없다. 최근엔 열감까지 생겨 밤에 자다가도 이불을 걷었다 덮었다 하다보니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또 하나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커피 한 잔은 여전하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커피 끊는 거라던데 커피가 그리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신 디카페인으로 바꾸든지 해서 최대한 커피 끊는 일을 뒤로 미루고자 애쓴다.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지니 하루가 길다. 한창 일 많고 잠 잘 자던 때에는 꿈도 못추던 아침 산책을 개와 함께 한다. 이러한 횡재에 누구보다 신난 건 우리집 개 뿐이다. 함께 한 날들이 벌써 11년이 가까워오니 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벌써 60이 한참 넘었다니 나보다 앞서 늙어가고 있는 셈이다. 년석의 몸 또한 삐그덕 대는지 전에 없이 힘겨워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이벤트가 없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이벤트가 없는 날이라고 해서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다. 이상하게 한 일도 없는 거 같은데 하루의 중간중간에서 보면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하루의 시간이 오전, 오후, 저녁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더 잘게 나누면 이들을 또 반으로 나눠 6개의 단위로 쪼개어 쓴다.
가벼운 아침 산책 후 이른 오전부터 머리 쓰는 일을 하는 편이고 늦은 오전에는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고 가끔씩 친구와의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이른 오후에는 가볍게 드라이브를 하면서 머리를 식히거나 장을 보면서 저녁에 먹을 거리를 생각한다. 늦은 오후에는 하루 중 그나마 식사다운 식사인 저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이른 저녁은 동네 달리기를 하거나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늦은 저녁은 시청할 것이나 읽을 것을 들여다보다 가벼운 근력 운동을 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이젠 거의 루틴이 된 이러한 일상이 무료하게 들리겠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물리지 않는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일상이 무료하기 보다는 평온하게 느껴지는 것이 나이가 든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나이가 든 것이 오히려 좋다. 다이어리를 빼곡하게 채우면서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비어있는 다이어리를 보면서 별 일 없음에 감사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자신에게 향하라는 말은 내면적인 의미도 있겠으나 신체에 대한 비중도 꽤나 크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몸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기력이 달린다거나 주름이 늘고 머리가 빠지고 피부의 탄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슬퍼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한 신체의 저하는 사실 당연한 것이고 식단이나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심지어 몸을 돌보지 않던 젊은 시절보다 더 건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 앞에서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갱년기의 증상이라고 하는 것들이 시차가 있을 뿐 어느새 나에게도 들이닥칠 때 늙음을 한탄하거나 불편을 호소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 증상들을 없애거나 늦추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러한 거부 본능에 맞춰 다양한 산업이 등장할 정도로 노화는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의 변화로 인해 나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몸의 기능들과 작용들이 사실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려면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삐그덕대는 순간 일상이 불편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내 몸을 챙겨야할 때가 된 것이다. 저절로 되는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 이렇게 생각하니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진다. 그 시작은 우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먹는 것, 하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등 하나하나 돌아보게 된다. 그저 생각없이 하던 말과 행동들, 일상 생활들, 사소한 습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동안 의식적으로 한 일들은 모두 나 자신이 아닌 남이나 남의 일들 뿐이었나. 나 또는 나의 일이었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사실은 모두 남에 관한 것이었다. 왜그리 나 자신에게 무심했을까. 지나고보면 그 때는 그래야했던 것이 맞다 싶기도 하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 또 그 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돌아간다 해도 또 그렇게 살 확률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이 좋다. 비로소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마침 나의 몸도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많은 것들이 떠나가고 있고 또 떠나갔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나 자신, 그리고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 남은 것들. 이것들을 돌보는 것이 좋기만 하다. 안 바르던 선크림도 꼼꼼히 바르고 대충 하던 세안도 시간을 더 들이고 마구 꾸겨 넣던 음식들도 천천히 음미한다. 걸을 때 발 뒷꿈치부터 디딘 후 발가락으로 끝을 내는지, 운동으로 허벅지 두께가 좀 두꺼워졌는지, 빠지는 머리칼을 대신해 새 머리칼들이 나고는 있는지, 이빨은 적당한 세기로 바르게 잘 닦고 있는지, 어느 하나도 무의식적으로 하던 시기는 끝이 났다.
예전의 나의 행동과 말들에 대해 가끔씩은 고릿적 일들까지 끄집어내며 찌질하고 부족했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이를 밑거름 삼아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을 한다. 때로는 남에게 조언도 하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기도 한다. 나는 잘못했지만,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미숙한 나의 말과 행동을 반면교사 삼아 한마디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면서 과거의 부끄러운 나 자신도 더불어 다독여준다.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게 과거의 미숙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걸 그들에게도 어김없이 말해준다. 내가 잘나거나 나는 잘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남들에게 반드시 알려준다. 따라서 이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부끄럽고 안쓰럽기도 하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힘들 때 한번씩이라도 쓰다듬어주고는 싶다. 괜찮다고, 괜찮아 질거라고, 그러니 웃으라고, 소리내어 크게 웃으라고.
오십이 된 나 자신에게도 되뇌인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웃으라고, 하하하 크게 웃으라고. 그래서 오늘 하루도 웃는다. 오십의 날들은 모두 다 웃는 날들이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