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록] - 생각들
내 맘 같지 않다. 얘전엔 몰랐다. 다들 내 맘 같은 줄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다 이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해가 생기고 곡해가 생기고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달랐다. 애전엔 억울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다. 참 많이 화도 내고 속상해하고 관계도 끊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남들에게 그리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경을 썼다. 딱히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진심을 다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묵묵히 내 일을 하면 남들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비난을 받거나 오해를 사거나 모함을 받거나 하면 이를 견디지 못했다. 나의 진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억울하기만 했다. 물론 나 자신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 생각한 부분들도 많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고 찌질하고 옹졸하게 행동했던 적도 많았다. 따라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비난을 받거나 지적을 당하면 무척 창피했고 자책도 많이 했다.
문제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오해를 했을 수도 있지만 악의적인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정직함과 묵묵함, 성실함이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억울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뒤에 그래봐야 타격은 있는 대로 받고 그 억울함이 쉽게 풀리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더 신경이 쓰였고 사전에 최대한 문제를 예방하려다 보니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사실 아무리 미연에 방지하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 사람 사이의 일은 생각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일은 아무리 계획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관계에 있어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일이 잘못될 수도 있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사람 사이의 일도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면 풀리게 되어 있다.
이런 생각이 예전에는 잘 들지 않았다. 일이 틀어지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오해가 생기면 마음을 닫아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물론 이를 성향이라 할 수도 있고 젊은 시절의 무경험이라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이러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딸에게도 생각날 때마다 나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것들을 말해주곤 한다. 나 자신도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너그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니 말이다. 그래도 일이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아도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차근차근 생각해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이상한 말을 하고 갑자기 화를 내고 기분 나쁜 행동을 해도 '왜 저래'하면서 지나치거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라고 생각하고 말려고 한다.
지난 날 후회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속상한 일에 대해 너무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이다. 기분이 나빠도 안 나쁜 척 했고 남들이 예의를 갖추지 않거나 악의적으로 행동하면 이를 피하거나 못하게 하는 대신 창피해하면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에게 잘못한 상대까지도 너무나 배려하면서 나 자신을 지키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화를 내야할 일에 화를 내지 못했고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잘못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방조하는 꼴이 되었다. 나 혼자 아닌 척 하거나 나 혼자 괜찮다고 괜찮은 것이 아님을 그 때는 몰랐다.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이렇게 조금씩 알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이 또한 오십이 되어 쌓이고 쌓여 알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그 길이 그리 험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철학자이자 백세인인 김형석 연세대 명얘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어 좋고 그 중에서도 60세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아마도 육십이 되면 마음이 더 나아지나 보다 싶어 이제는 오십을 넘어 육십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