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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의 허튼짓

오늘 하루는 묵언수행을 결심했었다.

4대 생불중 한분이셨던 틱낫한 스님께서 올 1월에 입적을 하셨는데

나는 어젯밤이 돼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말할수 없는  상실감이 몰려왔고, 아프고도 서글펐다.


언젠가 꽃이나 나뭇잎으로 돌아올 테니 그대들이 마음을 고요히 해서

스님이 인사하는 줄 알아보고 미소 지으면

당신이 행복할 거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정말로 훌륭하셨던 구도자를  잃은 아픔을 달랠길이 없어

오.랜.만.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오랜만에.... 그러니까... 오랜만이라서 그런 거였다.

앉아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산비탈에서 무거운 바위가 떨어져 내리듯 내 머리통이 바닥 쪽으로 곤두박질치는 타이밍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두 번을 더 반복하고 나서야 정좌를 풀고 게슴츠레한 마음으로 잠자리를 찾아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의 일로 스스로에게 겸연쩍었기에 만회할 겸 해서 묵언수행을 결심했다.

이번 주는 갤러리에 전시가 없으므로 방문객이 소소하니 가능할 듯했다. 

같은 공간에 사는 가족에게도 오해가 없도록 알려야 하므로

가족 톡에 이차저차 하여 오늘은 이만저만하고자 하니 양해해 달라고 장문의 글을 올렸더니

"그대의 슬픔을 같이 합니다..."라고 동반자께서 톡을 남겼다.



서두르는 마음 없이 고요하고 차분하게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전 늘 챙겨 먹던 누룽지도 먹지 않았다. 오늘은 뭐든 부족하게 살아보는 거다.

애도의 마음을 담아 화장도 하지 말까 하다가  얼굴 타는 게 싫으니 하던 대로 썬크림을 넉넉히 발랐다. 

 경극 주인공 같다.... 어쩔 수 없이 눈썹도 그려 넣었다. 눈썹만 그려넣으니 그것도 좀 거시기 해서

이것저것 첨가를 하다보니 평소 화장이 되어버렸다. ㅜ.ㅜ


밖으로 나와보니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려 온천지가 반짝거렸다.

그렇게 광명천지를 천천히 걸어 나가며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달할 무렵. 내 앞으로 뻗어있는 눈부신 봄 풍광 끝자락 부분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길게 마련된 테이블 위에 봄 꽃을 담은 예쁜 화분들이 즐비하게 마련되어있었다.

알록달록한 꽃잎에서 풍겨 나오는 생명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누구라도 홀리지 않을 수 없는 치명적 알.흠.다.움.

고맙게도 무료 나눔인듯했다. "어머나..저렇게 예쁜 꽃이 꽁짜라니!"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한다.

 다가가니 아름다운 여인께서 어떤 꽃이 마음에 드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약간 부끄러운 티를 내며 내 마음에 들어온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윽고   "마음이 괴로울 때 000 교회로 오세요"라고 하시며 여인께서 내게 꽃을 내미셨다.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고. 맙. 습. 니. 다."라. 고. 말. 하. 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아뿔싸! 묵언수행 중인데!!!!!!!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고맙습니다"이전에도 나는 여러 마디를 지껄여 댔던 것이다.

공짜 테이블로 다가가는 게 내심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정말 이거 무료로 주시는 거예요?"라고 주절거리며 다가갔었고 그쪽에서 교회에 다니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요"라고 막둥이 같은 대답도 했었다.


묵언 수행은 무슨..ㅜ.ㅜ.

나는 수행에 있어서 이렇게 저급한 부류이다.  나아지고 싶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런 내가 부끄럽고 안쓰럽지만 받아 든 꽃이 너무 예쁘니 그냥 넘어가는 걸루~헤헤~


그나저나 이 꽃 이름을 '틱낫한 스님의 꽃'이라고 짓고 싶은데. . .

 교회에서 받아온 꽃인데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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