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연 Jun 24.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상의 위력

지금도 조선소의 여름은 체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로 무덥고 지친다.

2006년!

처음으로 보게 된 조선소는 웅장하고 신기했으며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아줌마들이 깡통을 들고 다니면서 작은 붓으로 페인트를 칠하는데 일이 쉬워 보이더라.

너도 할 수 있겠더라."

지인의 소개로 처음으로 간 회사가 도장업체였다.  

생전 처음 접하는 안전모, 안전벨트, 안전화, 방독마스크, 귀마개, 보안경은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이 외에도 각종 작업도구들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여사원들이 많았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일하고 있었는데 꽤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다들 돈 버는 재미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들처럼 일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고 살았던 탓에 사회적응력이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에 근력이 부족했다.


잠시 경험했던 도장업체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남자 사원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그들을 육백만 불의 사나이로 만들었고 여사원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원더우먼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조선소가 어떤 곳인지 경험을 했다.

잠깐 쉬었다가 새롭게 마음을 잡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선소가 어떤 곳인지 알았으니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으니 원더우먼이 될 자격이 갖춰져 있지 않은가.


호황기여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용접, 취부, 밀링, 사상을 하는 회사였다.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은 사원은 파란색 줄이 두 줄 새겨진 안전모를 썼다. 그래야 신입사원인 줄 알고 주위 작업자나 관리자가 각별히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밀링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작업중지해 주세요."

고개를 들어보니 직영 관리자 4명이 서 있었다.

"카바를 하고 밀링을 해야죠. 카바를 제대로 안 하니까 칩이 여기저기 튀잖아요."

"........"

"입사한 지 3개월이 안 되었나 보죠?"
"네"

그들 중 젊은 사람이 현장 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는 은색 안전모를 쓴 사람이 인자한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조회시간에 들었던 신임 상무라는 생각을 했다. 신임 상무가 현장 패트롤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조회시간!

직장이 사진을 보여 주면서 신입사원 교육 제대로 시키라는 메일이 왔다고 했다. 어제 그 사진이었다.  입사하지 마자 한 소리 들으니 의기소침해졌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칩이 튀지 않게 막이를 잘하고 작업을 했다.


유난히 더웠던 7월!

작업을 마치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때 그 은색 안전모를 쓴 분이 현장을 순회하고 계셨다.

"수고하십니다."

"잘하고 있네요."

"회사와 성함을 좀 알고 싶은데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조회시간에 안전 우수사원 시상식이 있는데 내가 선정되었다고 했다.

그날은 그 상무님이 직접 오셔서 상패와 상금을 전달한다고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심장이 뛸 정도 였다.

잘 생기고 인자하신 상무님은 우리 회사 조회시간에 직접 오셔서 시상식을 해 주었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때부터 일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항상 열심히 일했다.  자주 현장을 순회하시는 상무님을 볼 때마다 더 힘이 났다.

조선소는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다 힘들다. 겨울은 몹시도 춥고 여름은 탈진할 정도로 덥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갖가지  안전 보호장구를 하고 작업도구를 챙겨서 일하는 현장사원들은 모두 슈퍼맨이고 슈퍼우먼이다.

나는 그 상무님이 주신 상의 위력으로  누구보다도 강하고 힘차게 조선소 생활을 해 나갔다.

곽상무 님이 주신 그 상은 나를 조선소에서 춤추게 했다. 남자도 하기 힘들어하는 사상도 거뜬히 해냈으며  노동에 딱 맞는 체질이 되어 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증명되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베테랑이 되게 해 준 그 상의 위력을 잊을 수가 없다.

매일 현장을 순회하시면서 현장사원들을 격려해 주시던 곽상무 님은 잘 계시는 지 안부가 궁금하다.




이전 05화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