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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Jun 21.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교육이 준 선물

2년 전에 산 운동화가 신발장에 그대로 있다. 디자인도 예쁘고 키도 커 보이게 하는 하얀색 운동화다. 몇 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매일 안전화를 신고 출근을 하고 시장 갈 때는 좀 덜 예쁜 운동화를 신고 그 신발은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야드에 일감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교육일정이 잡혔다. 한 달 동안 업무 기량 교육을 받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너무나 마음이 설레어서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쳤다.

한 달 동안 받는 교육은 16년 만에 처음이다.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안전화를 신지 않고 내가 아껴 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은 안전장구를 하지 않고 출, 퇴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안전화, 안전모, 안전벨트, 보안경, 귀마개, 마스크는 꼭 갖추고 다녀야 하는 필수 장구다. 무겁다.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교육을 받는다니 잘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난 이참에 책을 실컷 읽어야겠다."

"난 물을 실컷 마셔야겠어. 정수기도 가까이 있고 화장실도 가까이 있으니 맘껏 물 마시고 그동안 쌓인 나쁜  것들을 다 배출시켜야겠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다 생기다니..."

그동안 아껴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하니 발걸음이 사뿐사뿐했다. 모델의 걸음걸이가 이럴까?  기분이 더할 수 없이 상쾌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구 중에는 지적 욕구가 있다.

실로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듣는 강의는 한 가지라도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배가 만들어지는 자세한 과정과 조선소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사람이 하던 일들을  이미 로봇과 자동화로  많이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강사의 프로필을 듣고 그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치관이나 취미 등을 듣는 것은 역시 흥미로운 일이었다.

머리를 식히고 경직되었던 마음과 근육을 이완시키며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뒤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강사들이 다 고맙고 수고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계셨다. 도면, 구조, 절단, 물류시스템 등을 강의 한 분이다. 어느 한 사람이 졸아도,  누구 한 사람이 듣지 않아도 열심히 강의를 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존경심이 들었다.


교육을 받으니 처음에는 좋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니 교육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니 배가 더부룩하고 살이 찌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많이 움직이니 살찔 틈이 없었다. 노동이 곧 다이어트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을 너무 귀하게 여기면 오히려 생이 위태롭게 될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적당히 불편하게  억누르면 생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생각났다.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켜야 건강한 생을 산다고 설파한 노자의 지혜가 생각났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내가 현제 건강하게 살고 있는 비결이었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깨끗하고 시원한 환경에서 교육받다가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기 때문이다.

조선소 현장일이 내 성격에 맞는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소중한 나의 일터가 새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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