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연 Jun 20.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야드에 피는 무지개

'한반도 평화경제가 답이다.'라는 주제로 한 김진향 개성공단 지원재단 이사장의 강연을 '알릴레오'를 통해서  들었다.

그 강연 중에 개성에서 있었던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무조건 사랑은 생긴다는 것이다. 좋은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성의 사랑은 모두 슬픈 사랑이라고 한다. 개성의 사랑은 무조건 깨진다고 한다. 사랑이 어떻게 좌절되는가?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

"쟤들 썸 아냐?  썸 맞지?  이상하지?"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라는 것이다. 남측 노동자들은 월요일에 개성에 들어가서 금요일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고 한다. 월요일 날 들어가는데

"어? 출입이 거부되는데요?"

"뭔 소리야? 나 7년째 다니고 있어. 이런 일 없었어."

"출입이 거부 났습니다. 저기 문의해 보세요."  문의하러 가면

"혹 회사에 누구하고 사귀나? 혹 북측 노동자 누구 하고 가깝나?"

남측 노동자는 그렇게 북측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북측 직원은 2,3개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가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한다.

사랑은 국경이 없는 것이다. 나이도 초월한다. 같이 있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감정은 생길 수가 있다.


2016년 2월 나는 다른 회사에 지원을 간 적 있었다. 그곳에서 k를 만났다.

k는 내가 지원 간 반의 반장이었다. k의 눈빛은 유난히 검고 빛났다.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감성적이면서도 강하게 꼬집는 그의 말솜씨는 유려했다.

그때 k는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해양 프로젝트인 인펙스라는 배의 전기실 결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풍부한 경험과 파고드는 자세로 일에 대해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었다. 반원들은 그를 좋아했고 잘 따랐다.

"반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세요.?"

내가 물었다.

"저는 27세에 반장이 되었고 30세에 직장을 하면서 관리에 대한 시행착오를 많이 경험했어요. 또 물량 팀장을 하면서 다른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느끼고 배우면서 고쳐나갔어요."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포스가 넘치게, 때로는 다정하게 말하는 모습과 행동들이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항상 반성하고 노력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그가 진행하는 조회시간을 좋아했다. 그는 타고 난 말솜씨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는 관리자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내뱉는 말은 우회적이었고 세련되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진심과 애정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작업자들은 그를 잘 따르고 좋아했으며 일도 열심히 했다.

작업장을 부지런히 둘러보면서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새로운 작업지시를 내리고 , 관리자 회의에 참석하고, 설계담당을 만나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엄청 부지런한 관리자였다. 그러다가 전기패널 결선에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그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보면 멋있고 든든했다. 혹시 비싼 케이블을 잘못 절단해서 재 포설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까 봐 결선을 포기할 정도로 겁이 많았는데 그 반장과 함께 일하면서부터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나는 결선을 잘하기 시작했다. 그가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헤쳐나가 주니 그 당시 우리 반은 모두 막힘이 없었다.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는 진정한 리더자였다. 1명의 진정한 리더자는 100명의 평범한 사원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옳았다.

지금까지 나의 머리는 차가운 이성만 가득했고 가슴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쇠를 다루는 조선소에서 쇳가루, 소음, 분진과 싸우고 개념 없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두 번 다시 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해 봄!

봄과 함께 설렘이 찾아왔다. k였다.

그 설렘은 젊은 날의 설렘과 달랐다. 그저 고맙고 소중해서 말없이 지키고 싶은 감정이었다.

2017년 9월 조선소에 일감이 줄어들자 그는 팀원들과 함께 타 지역으로 갔다. 또 다른 곳에서 도전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최고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과를 마치고 사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넓디넓은 야드에 커다란 무지개가 선명하게 피어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야드에 핀 무지개는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이전 02화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