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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Jun 20.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무일푼에서 부자가 되려면

42세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젊지 않은 나이에 빈털터리가 되니 마음이 조급했다.

눈내리는  조선소 풍경

여기서 한 번 더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 육체노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창원에 있는 회사들을 조사해보니, 계약직만 채용하는 구조였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일 년이 되기 전에 퇴사를 하게 하고 다시 입사를 하게 하는 구조였다.

"언니 전에 나랑 친했던 정숙 언니 알지?"

여동생이 말했다.

"응"

"그 언니 남편이 창원공단에 일이 없어서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하는데 돈을 엄청 많이 번다더라. 거제도는 IMF 때도 개들이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더라."

나는 솔깃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시급도 창원보다 많고 보너스도 있고 성과급도 있다고 했다.

기회비용을 따져 보았다.

창원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아이들도 창원 할머니 댁에서 지낼 것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필요한 돈이 적고 고용도 불안하다. 똑같은 시간을 일하는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는 유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고 엄마의 손길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 줄 수 있는 엄마의 능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로 가기로 결정했다.


조선소에 일감이 많다 보니 시간을 많이 할 수 있었고 당연히 월급도 많았다. 보너스와 성과급을 받는 달에는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회사에서 먹을 수 있고 작업복도 사내 세탁소에서 세탁을 해 주었다. 돈 쓸 일이 없었다.

평생을 근검절약하면서 사신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생활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현재의 내 분수와 처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얼마를 버느냐를 자랑하지 말고 얼마를 모으느냐를 자랑해라."

아무리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많으면 돈을 모으지 못하고 적게 벌어도 적게 쓰면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축이라는 것은 소득 대비 소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씀이셨다.

조선소는 버는 대로 저축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신발부터 작업복까지 다 주고 세 끼 밥도 주고 세탁도 해 주며 통근버스도 있다. 남자 사원들에게는 기숙사도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도 일이 많다 보니 돈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무일푼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곳은 조선소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나는 조선소 다닌 지 15년 만에 작은 평수지만 내 집을 마련했다. 경차지만 내 차도 샀고 노후 준비도 계획대로 해 나가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두 아이가 대학 다닐 때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여행을 자주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조선소는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조선소로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협력회사에 1년만 다녀도 유치원비부터 고등학교 학자금까지 다 나온다. 5년 이상이 되면 대학교 학자금도 나온다.

57세가 된 지금도 나는 매일 영양사가 식단을 짜고 조리사가 조리해 주는 음식을 먹고 있다. 작업복은 세탁소에 맡기고 전용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우아한 현장사원이다.


"언니. 우리 아들 취직도 못하고 있는데 조선소에 취직할 수 있을까?"

"안 돼. 힘도 없어 보이고 나약해 보여."

"나 조선소 취직해서 너랑 같이 다닐까?"

"야 야 말아라. 넌 하루도 못 버티고 그만둔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조선소로 향할 때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근면 성실한 자세와 건강한 체력이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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