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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Jun 20. 2021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

타고 난 승부사

나는 타고 난 승부사다.

어릴 때부터 지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내 나무 뭉치가 가장 큼직해야 했고 땅따먹기를 하거나 공놀이를 해도 이겨야만 기분이 좋았다. 공부도 일등을 해야 했고 달리기도 일등을 해야 했다. 승부욕이 대단했다. 노는 것은 재미있고 신나는데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다. 그래도 지기 싫어서 억지로 했다. 어떤 목표도 없었고 좋아하는 과목도 없었다. 무작정 암기하고 시험 치르고 시험 치른 뒷날은 다 잊어버렸다.

말 그대로 벼락치기 공부를 한 것이다. 어쨌든 성적은 잘 나왔다.

사회생활을 별로 하지 않고 결혼을 했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동안 승부근성은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승부근성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보다 일을 잘해야 직성이 풀렸다. 일도 많이 하고 시간도 많이 해야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시급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더 해야 월급이 많은 구조였다. 대한민국 아줌마는 가장 억척스러운 존재이고  엄마는 철인이라는 것을 조선소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여사원보다 시간을 적게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낼모레면 60이 되는 지금도 한 시간이라도 더 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야드에 일감이 많아서 마음대로 시간을 할 수 있었을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감이 현저히 줄어서 일을 많이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인원만 잔업을 하거나 특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누구는 특, 잔업을 하고 누구는 못한다면서 불만은 터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똑 같이 새벽에 출근하여 똑같은 시급으로 똑 같이 일하는데 누구는 시간을 많이 해서 월급을 많이 받고 누구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을 적게 해서 월급을 적게 받는다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신경이 쓰였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하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 먹으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두 아이도 다 커서 용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일이 없는 지금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 된다. 사실 일을 적게 하니 월급은 줄었어도 행복지수는 높아졌다.  

나는 타고 난 승부사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시간도 항상 남보다 많이 했다. 이제 타고 난 승부사답게 뒤로 물러나야 할 때다.  나의 시대는 갔다. 젊은 세대가 대세가 될 시간이다.  이제 정년 후의 내 삶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는 내 인생을 대비하는데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낼모레면  정년퇴직할 나이에 한 시간이라도 더 하려고 애쓰다 보면 남는 것은 골병과 약병뿐일 것이다.  이제 육체적 노동을 벗어나 진정으로 내갸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부지런히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남은 60여 년의 세월을 새롭게 누리면서 살아가는데 출사표를 던졌다. 

 역시 나는 진정한 승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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