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링이 필요한 인간관계
"넌 직장생활에서 뭐가 제일 힘들대?"
내가 물었다.
"일도 힘들지만 그보다 사람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더라."
조선소 생활 20년 차인 그녀의 대답이다.
어느 회사를 가든 불편한 사람은 항상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선소 현장은 환경 자체만으로도 힘들지만 일 또한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선소서 일하는 것을 꺼려한다. 요즘은 사람 구하기가 더 힘들다. 일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입사를 한다고 해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 이유가 일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사실 일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싫어서 그만둔다."이다.
나도 사람이 싫은 경우를 경험했다. 조선소 하청업체 현장은 대부분 다른 일을 하다가 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깊고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관리자라는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거나 그 알량한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7년 전 회사의 반장이라는 사람은 악바리에다가 욕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개념 없는 반장을 만나면 그 반원은 미친다. 그때 우리 반은 거의 매일 욕설이 오갔고 멱살을 쥐고 싸우는 일이 빈번했다. 직속 반장이 이런 사람이면 정말로 피곤하다. 작업지시를 직속 반장이 하니까 아부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필터링을 할 수 없으니 버티거나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그 진상 같은 반장이 싫어서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
같은 동료와의 관계는 불편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은 다들 제 잘난 맛으로 산다. 나 또한 내 잘난 맛으로 산다. 반장의 지시를 받고 일하러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기 위해서다. 사람을 사귀기 위해, 또는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원들 중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험담을 할 것이고 나는 그 사람을 필터링해서 그림자로 취급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도 그 사람이 싫어진 것이 분명하니까.
이렇게 한 번 뒤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우리는 이미 그런 인격체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또 험담을 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관계만 유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한없는 이해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해 못할 상황이나 이해 못할 사람에게는 완벽한 끝을 고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은 변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이해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시 친해지기도 하고 또다시 멀어지기도 했다. 호의는 변덕스러웠고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도 했다. 이렇게 몇 번의 필터링을 거치고 나니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어떤 말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살아가면서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마음이 맞고 나를 잘 알아주는 친구가 몇 명 있으니 회사 생활이 든든하고 즐겁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시기, 질투가 인간의 본능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시기, 질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내가 겸손하지 못하고 자랑질을 했기 때문이었고,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것 또한 내가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디를 가든, 어느 무리에 속해있든, 가장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겸손함과 감사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