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저기 훈련병 새끼들 봐봐. 군기 전혀 안 잡혀 있는 거 봤냐? 와... 난 저런 거 보면 진짜 이해가 안 간다."
훈련병 시절, 몰래 야간 사격을 안 하다 걸려서 조교에 불합격할 뻔했던 내 동기 A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니, 재네들은 왜 이렇게 제식을 못 합니까? 무슨 바보들만 모아 놓은 거 같습니다. ㅎㅎ"
훈련병 시절, 이보다 더 심했던 후임 조교 B가 훈련병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00 병장님, 저 훈련병은 진짜 멘탈이 별로인 것 같습니다? 저런 애들은 진짜 군대 오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저희 때만 했어도 그렇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훈련병 시절, 훈련하다 멘탈이 나가서 내 앞에서 질질 짜던 후임 조교 C가 그새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과거의 기억은 싹 잊고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했다.
군 복무 시절, 지겹도록 동료 조교들에게 들었던 류의 얘기들이다. (물론 나 또한 분명 다른 이에게 이런 류의 얘기를 했겠지... ㅎㅎ) 2년 동안 조교들을 관찰해본 결과(나 자신을 포함), 어찌 된 일인지 하나 같이 훈련병 때의 기억이 삭제된 듯했다. 자신의 훈련병 시절 친 사고들, 실수들, 고통, 아픔 등이 담긴 훈련병의 마음은 사라지고, 이들에게 남은 건 조교로서의 입장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학교에서도 본다.
(연구실)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멘탈이 안 좋은지 모르겠어요. 뭐만 하면 엄마 찾고... 우리 학생 때만 했어도 이렇지 않았는데..."
"어우, 저는 수업 시간에 이상한 질문하고 까부는 애들 정말 질색이에요."
"맞아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수업 시간에 집중은 안 하고 떠들고 까불고, 수업시간에 통제가 잘 안 돼서 너무 힘들어요. 저는 이런 애들이 정말 이해가 안 돼요."
(학부모 상담 시간)
"저희 애는 누굴 닮았는지 뭘 잘하는 게 없어요... 맨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도대체 뭔 생각인지..."
"애를 학원에 보내도, 성적이 안 오르더라고요... 왜 그런 걸까요?"
"저는 도무지 제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요즘 애들은 다 그런 건가요? 제가 어릴 때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분명 우리 어른들에게도 아이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나의 모든 것을 돌봐주던 만능 해결사 엄마만을 찾던, 수업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딴짓을 하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아무런 목표의식 없이 그냥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말 그대로 학원에 다니기만 했던,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싶었던 그런 시절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기억은 잊혀졌다. 아니면 위의 사례(조교와 훈련병)처럼, 우리가 어른의 입장이 되면서부터 아이의 마음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위의 기억들을 반추하며 나 또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너무 어른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개구리올챙이 #어른아이 #지식의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