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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18. 2020

슬럼프 탈출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단 1가지

변화는 인정에서부터 시작된다.

2018년, 내 인생 최악의 슬럼프가 찾아왔다. 원인은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는 그동안 쌓여온 오만, 교만, 게으름, 두려움, 완벽주의, 낮은 자존감, 신체적으로는 군대를 다녀와서 안 좋아진 피부, 노화된 외모, 사회적으로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부정적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아, 세상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


부정적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이를 1년 동안 지속했다.


그동안 미약했던 부정적 생각은 점점 커져서 나의 사고 전체를 잠식해버렸고, 결국엔 '나는 왜 살까? 나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긴 할까? 내가 굳이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1년 동안을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첫째, 내가 운영하는 학급이 엉망이었다. 선생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아이들의 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우리 반은 거의 무정부 상태였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끼리의 다툼이 일어났고, 저녁 시간에는 학부모님의 민원 전화를 받아야 했다.


둘째, 인간관계도 엉망이었다. 특히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내가 항상 혼이 빠져 있고, 분위기가 어두침침하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리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도 내가 배제되었다. 모임에도 더 이상 불러주지 않았다. 동료들이 하는 내 뒷담화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셋째, 일처리도 엉망이었다.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 때문에,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항상 일처리가 늦었고 급기야는 부장회의에서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내 이름이 거론되기까지 했다.



전부 인정하기 싫었다. 군대 가기 전에 학급운영 잘한다고, 선생님 정말 멋있다고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칭찬받던 '과거의 나'와 매일 항의 전화를 받는 '지금의 나' 비교되었다.

'지금 엉망이 된 우리 반은 내가 한 게 아니야. 지금은 내 본모습이 아니라고!'


인간관계도 인정할 수 없었다. 한때 거의 모든 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항상 인싸였던 내가 현재는 직장 내 왕따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에 대한 업무 평가 또한 인정할 수 없었다. 교대에서 전체성적 top을 하기도 했고, 군대에서는 으뜸병사를 하면서 일 잘한다고 매 번 칭찬을 받았던 내가, 지금은 너무나 일을 못해 부장님들이 나에게 중책을 맡기길 꺼려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엉망이라고? 말도 안 돼! 그래 지금 현실은 꿈인 거야. 이건 정말 내가 아니야. 그래 잠시 내가 미쳤을 뿐, 지금 현상태는 진정한 내가 아닌 거야!'


난 지금의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 특히 친구들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일절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친한 동기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 봐... 몇몇 친구들이 내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연락을 해왔지만 난 그들을 피했다.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난 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에 평균 8시간을 게임으로 허비했다. 심지어 주말에는 밥도 안 먹고 쉬지 않고 12시간 넘게 게임을 한 적도 있다. 하루 종일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벌게진 눈과 쾡한 몰골로 학교에 출근을 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피했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니 교실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엉망이 된 교실을 피하고자 퇴근 후 바로 게임을 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시도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배구, 배드민턴, 요가 등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전부 다 2주도 안 돼서 때려치웠다. 단 번에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도들도 해봤다.

'음... 그래. 책에서 변화를 하려면 내면이 중요하다고 했지? 그래 며칠 시간을 잡아서, 내 내면을 한 번 파고들어서 그 근본적 원인들을 한 번 제거해보자! 그래 난 바뀔 수 있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어!'


대학생 때 배운 상담심리학의 인지치료기법, EFT, 호오포노포노, 시크릿 등 온갖 심리 치유 기법들을 동원해서 나를 바꾸고자 했으나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만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책에서는 이렇게 하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 이제 괜찮아지겠지?'하고 다음 날 일어나서 전혀 변화가 없는 나를 보고 다시 실망하고... 또 새로 시도해보고 또 실망하고... 자존감이 저 밑바닥까지 하락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자, 이번엔 외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부모님, 은사님, 교수님, 심리 상담사, 용하다는 스님, 사주가, 무당, 수도사, 유명 유튜버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들을 다 해봤다. 그분들한테는 정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정말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


모든 수단들을 다 동원해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전부다 실패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학교 아이들, 학부모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나. 일 못하는 나. 직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나. 생일날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하는 나. 현실도피를 위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 나... 그리고 이러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고 있는 나....


그 순간 나 자신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1시간 넘게 펑펑 울었다.


다 울고 나니,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가 보였다. 그 누군가는 바로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는 나를 도우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학대하고 홀대했던 나 자신을 돌봐주기로 했다.


그토록 집착했던 '과거의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아무런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태를 바라보기로 했다. 상황에 대해 좋다, 싫다의 판단보다는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아이들, 학부모님과의 관계를 좋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 동료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일어난 문제들은 그동안 내가 쌓아온 과정들의 결과라는 것을 알기에, 한 번에 바꾸려고 욕심내지 않았다. 대신에 좋은 습관을 만들어 꾸준히 노력하면서 천천히 내 인생을 바꾸어 나가기로 했다. 매일 독서, 운동, 명상을 했다. 하루 한 끼 또는 안 먹던 밥도 제때 챙겨 먹었다.


정말 내가 나 자신을 도와서 하늘도 감명받은 것일까? 내 하루하루의 변화는 복리로 쌓여 갔고,  3~4개월 뒤에는 정말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 되어 있었고, 직장 동료로부터 신뢰받는 동료가 되어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시 좋아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독한 완벽주의 성향, 열등감, 질투, 오만 등의 그동안 나를 망쳐왔던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이다. 뭔가 그동안 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안 좋은 이물질들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동안 나는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이기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오히려 응원하거나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예전엔 누가 나를 비판하면 그게 맞는 말일지라도 발끈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고마워한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부정적 감정의 구렁텅이와 지독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즘에 주변에 힘든 친구들이나 제자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나를 많이 찾아온다.


그중에 몇 달간 상담을 하고 있는 한 학생이 최근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정말 죽을 거 같아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싫어요. 어떻게 하면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 모습은 제가 아니에요. 정말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 저 정말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는 걸까요?"


이 학생은 예전의 나와 비슷한 성향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에다가 타인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쓴다. 지금의 망가진 자신이 너무 싫고, 현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너무 두렵다고 한다. 과거 슬럼프 시절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답했다.


"지금 너 자신조차 너를 싫어하고 도와주지 않는데, 어느 누가 너를 도와주겠니? 설사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네가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 한 효과는 거의 없을 거야. 문제의 해결책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 안에 있어."


학생에게 데일리 리포트, 명상, 운동, 잠 잘 자기 등등 실제적인 조언들도 해주었다. 꾸준히 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거라고, 꾸준함과 작은 성취가 너의 자존감을 높여줄 거라고 얘기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연락이 다시 왔다.

"선생님, 아무 소용없어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요. 유명 정신과 의사 유튜버랑 심리 상담사 유튜버한테도 상담받아봤는데 소용없어요. 이런 제가 너무 싫어요."


마치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하다. 가만히 학생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다가 한마디 건넸다.


"음... 근데 저번에 선생님이 조언해준 것들은 실천해봤니?"


"아니요..."


"네가 너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한 변화하기는 힘들 거다. 한 번에 변화하는 건 없어. 욕심내지 말고, 이불 개기라도 좋으니 꾸준하게 실천했으면 좋겠다."


그 이후로 똑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자신을 인정X 실천X- 힘듦 - 고민상담 - 조언 - 자신을 인정X 실천X )되고 있지만, 나는 똑같은 대답을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변화는 인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은 일이기에 나는 좀 더 확고하게 말을 할 수 있다.


난 이 학생이 지금은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조만간 극복해낼 것이란 것을 안다. 충분히 강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짜증 나고 화나는 상황들을 겪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 학생의 내면적 성장에 도움이 되리란 것을 안다.



나의 글이 이 학생과 그리고 현재 말 못 할 슬럼프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https://brunch.co.kr/@lk4471/10

https://brunch.co.kr/@lk4471/35



#슬럼프탈출 #상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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