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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Sep 12. 2020

한때 유튜버였던 내가 유튜브를 그만둔 이유

유튜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작년 7월, 반 아이들의 권유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우리 반,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하나의 멋진 추억을 남기는 것, 선생님이 다양한 도전을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무언가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유튜브 채널을 만든 이유였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학생영화로 시작해서 악기 연주(리코더, 하모니카, 기타, 피아노)영상, 노래 커버 영상, 체육수업 영상까지 다양한 영상들을 업로드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생님! 멋있어요. 선생님 노래 정말 잘 듣고 있어요.'라며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학생들이 많았다.(아마 내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의 80% 이상은 우리 학교 학생들일 것이다. ㅎㅎ) '선생님이 악기 다루는 것을 보고 멋있어서 음악학원에 등록했어요.'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우리 반 아이들 같은 경우는 내가 유튜브를 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고 나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내가 유튜브를 한다는 것이 알려져서, 실제로 영어 수업시간에 내가 부른 팝송 영상이 수업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 허락하에, 반 아이들과 만든 학생 영화가 인성교육 시간에 학교 전체에 방송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설렜다. 또 다른 목표들도 생겼다. 우리 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하게 유튜브 활동을 해서 나중에 구독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지금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이 하는 것처럼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주말이나 저녁에 같이 독서도 하고, 공부나 학교생활에 대해서 고민상담도 나누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유튜브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유튜브는 혁명이야.
유튜브를 통해서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러던 어느 날, 내 노래 커버 영상에 달린 아이들의 유튜브 댓글을 보고 이러한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https://brunch.co.kr/@lk4471/54


'술이 문제야', '빌어먹을 인연'의 가사를 찾아보니, 충격이었다! 이 노래는 우리 아이들이 들을만한 노래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유튜브 영상 다음에 추천 영상을 보니 아이들이 요청했던 성인들을 위한 가요 영상들이 있었다.


'내 노래 커버 영상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에게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유튜브 활동에 대해 그리고 유튜브라는 플랫폼 자체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1.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2. 나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질문1.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유튜브에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콘텐츠들도 많지만 해로운 콘텐츠들도 많다. 선생님이 유튜브 영상을 올리면 과연 아이들이 선생님의 영상만 볼까? 아니다. 추천영상이나 평소에 좋아하던 유튜버들의 채널에 가서 또 영상을 시청한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평소에 좋아한다는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아이들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온갖 욕설에, 자극적인 콘텐츠들... 가끔씩 포털사이트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는 bj들의 채널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언어 사용이 장난 아니다. 말끝마다 욕설, 비속어 사용, 특정 계층을 폄하하는 혐오 발언들,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 사용까지...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정보에 대한 비판능력과, 선별능력을 길러주면 충분히 아이들이 유해 콘텐츠들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쎄... 한참 호기심 많고 자극적인 것에 쉽게 영향을 받는 아이들에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어른인 나조차 유튜브에 접속을 하면, 나도 모르게 호기심에 자극적인 제목이나 썸네일의 영상을 클릭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영상을 찾으라는 말은 마치 PC방 안에서 스스로 좋은 인터넷 강의(인강)를 찾아서 들으라는 말과 같이 들린다.



둘째, 유튜브는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확률이 크다. 유튜브는 한 기업이 만든 플랫폼이다. 기업의 최종 목적은 이윤창출이다. 아이들의 성장 따위는 이들의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광고를 많이 보게 하여 돈을 버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유튜브는 시청자들이 플랫폼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기 위해서 인기동영상, 추천 동영상, 알고리즘 추천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한다. 어른인 나조차 유튜브의 이러한 술책에 당해서, 매번 유튜브에 들어갈 때마다 이런저런 영상들을 클릭해보다가 시간을 많이 낭비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아이들이 하도 주의집중을 못하는 바람에, 원격학습 영상들도 유튜브 링크 제발 걸지 말아 달라고 학부모님들의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요새 아이들의 데일리 리포트를 검사해보면 깜짝 놀란다. 하루에 유튜브를 4~5시간 이상 시청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유튜버들이 말하는 것이 웃겨서, 멋있어 보여서, 공부하기 싫어서, 심심해서 유튜브를 본다고 한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학교도 안 가고, 집에는 통제할 부모님도 안 계시니 이 친구들의 유튜브 중독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중 대부분의 친구들은 학업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한참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해야 할 시간에 멍하니 유튜브를 시청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셋째, 유튜브는 학습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튜브를 눈으로 시청만 할 뿐(=input),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하거나, 토의-토론(=output)을 하지 않는다. 즉 유튜브는 아웃풋보다는 인풋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유튜브 라이브 기능은 제외하고) 하지만 학습은 인풋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방금 받아들인 정보들을 말하기나 글쓰기 같은 아웃풋을 통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영상을 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숨어있다.(e학습터영상, 인터넷강의영상 모두 마찬가지)




질문2. 나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NO'.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심을 잃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회수, 구독자수, 좋아요수에 집착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나와 비슷한 컨셉을 가진 교사 유튜버들과 조회수와 구독자수를 비교하는 나 자신도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교사 유튜버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조회수와 구독자를 확 늘릴 수 있는 영상을 만들까 고민하고 집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정말로 교육적인 영상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상들은 인기가 별로 없다. 다른 영상들에 비해 자극적이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 '당장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교사 브이로그 영상을 찍어볼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인기 많은 다른 교사 브이로그 유튜버들처럼 멋진 모습, 잘생긴 모습, 이상적인 교사의 좋은 모습들만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면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와... 교실남...
네가 연예인이냐?
넌 교육자야, 인마!
네 초심은 어디 간 거야?'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교사 유튜버가 되겠다는 내 첫 마음가짐이 떠올랐다.


'하... 그래 이건 아니지.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 순간 당장 마음을 다시 고쳐 먹기로 했다.



둘째, 현재 나의 실력은 형편없다. '과연 지금의 형편없는 내 실력으로 아이들이나 학부모,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설명하는 학생 지도 영상을 보는 것보다, 그냥 좋은 책 한 권 더 보거나 다른 전문가들의 영상을 시청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훌륭한 output을 하려면 그만한 input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경험과 전문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그 상태에서 output을 해봤자 나오는 영상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혹자 '영상을 만들면서 공부하면서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일단 영상편집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영상편집은 처음 영상을 만들 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배우는 게 많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오르면, 그냥 단순 노가다 작업에 불과하다. 어떤 때는 영상을 기획하고 찍는 시간보다 영상편집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다.




차라리 '부족한 실력으로 영상 촬영하고 영상 편집할 바에는, 그 시간에 좀 더 내 실력을 키우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나는 유튜브를 그만두었다. 유튜브를 그만둔 대신, 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매일 글쓰기와 독서를 시작했다.


가끔씩 오랜만에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나랑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시작한 교사 유튜버들의 구독자수가 몇 천, 몇 만씩 되어있는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솔직히 배가 많이 아프다. ㅋㅋㅋ 나도 모르게 '나도 계속했으면 저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을 내보이는 시기가 아니라, 좀 더 나를 채워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어차피 내 유튜브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원실력으로 평균회귀할 것을 알기 때문에, 난 오늘도 묵묵히 글을 쓰고, 독서를 하고, 수업 연구를 한다.


사실 현재까지는 유튜브만큼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급력 있는 플랫폼이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훗날 유튜브의 악영향 그 이상으로 내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 같다는 실력과 자신감이 생기면 유튜브를 다시 시작해 볼 예정이다.



#유튜브 #교사유튜버 #유튜브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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