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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Sep 16. 2020

약속 지키기 vs 포경수술

주말에 학습경과 확인을 하기 위해 우리 반 학생인 민재(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재는 평소 공부 습관이 잘 잡혀있지 않은 학생이다. 특히 요즘에 학교 숙제나 과제를 잘 안 해오는 경우가 잦아서, 특별 케어(?) 중이다. 


"민재야, 어제 E학습터는 왜 안 들었니? 그리고 데일리 리포트는 밴드에 왜 안 올렸어?"


"아... 죄송해요...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깜빡할 리가 없을 텐데... 분명 어제 오후에도 선생님이 전화했잖아.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어."


"아... 사실 저녁 8시 이후에 엄마가 폰이랑 컴퓨터를 사용 못하게 했어요..."


"그것도 말이 안 되지. 세상 어느 부모님이 아들이 학교 숙제하는데 컴퓨터를 사용 못하게 하시겠니? 솔직히 말해봐.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한 거지?"


"(잠깐 침묵)네... 죄송합니다."


"안 되겠다. 민재 너는 선생님이랑 개인 면담 좀 해야겠다. 월요일 오전(온라인 학습시간)에 학교에 나오도록!"


"네?? 그건 좀...(ㅠㅠㅠ)"




월요일 10시 반, 민재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학교로 찾아왔다. 방금 일어나서 급하게 학교에 왔다고 한다. 뻘쭘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는 민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까 반은 호기심, 반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민재야, 앞으로 너 어떻게 할래?"


현재 코로나 사태가 금방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따라서 온라인 학습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온라인 학습을 위해서는 집에서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자기주도학습능력)을 길러야 된다는 점 등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그리고 현재 민재가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민재야, 솔직히 얘기해서 하루에 얼마 정도 공부하니?"


"(머뭇거리다가) 거의 안 해요."


"그럼 뭐해?"


"게임이나 유튜브, 휴대폰을 하죠.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냥 하기가 싫어요."


"음... 한 번 생각해봐. 만약에 지금 네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앞으로 1년 뒤의 네 모습은 어떨까?"


"게임 폐인? 아마 망하겠죠?"


"그래, 안 좋은 모습으로 변할 확률이 높지... 그럼 앞으로 10년 뒤의 네 모습은 어떨까?"


"(생각에 잠긴 민재)..."


"작년에는 네가 그래도 반에서 성적이 최소 중간 정도 이상은 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 맞지?"


"네."


"그리고 거의 6개월 동안 지금처럼 안 좋은 생활패턴을 반복한 결과 지금은 어때? 선생님이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냉정하게 보면, 넌 반에서 '최하위'야."


"엥? 제가 최하위라고요?(충격적인 표정)"


"어... 너도 얼마 전에 생활통지표 받아서 알 거 아니야?"


"아... 그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 네가 하루 종일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생활을 엉망으로 보낸 결과야... 이게 지금 당장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거든... 민재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 전부가 나중에 결과에 영향을 미칠 거야."


"하... 선생님 저 어떻게 해야 해요? 저 망한 거 아니에요?"


"뭘 어떻게 하긴? 앞으로 선생님이랑 같이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E학습터도 듣고, 데일리 리포트도 매일 쓰고~ 민재야."


"네?"


"민재야!"


"네??"


"솔직히 선생님은 네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친구인데,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를 못 하는 거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좀 마음먹고 하면 정말 잘할 거 같은데... 네 소중한 재능들을 너 스스로 썩히고 있는 거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 선생님이 지금 너를 왜 불렀을 거 같아? 너 혼내려고? 너 공부 못한다는 거 알려주려고? 전부 아니야... 네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끔, 앞으로 잘할 수 있게끔 도와주려고 부른 거야."


"(...)"


"민재야, 선생님이랑 한 번 열심히 해보자. 어때?"


"네, 한 번 해볼게요."


그때 마침 아까 주문했던 햄버거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울린다.

"일단 햄버거 먹고, 선생님이랑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지, 생활 패턴을 바꿀지 의논하자. 아, 그리고 친구들한테는 햄버거 선생님이 사준 거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애들이 섭섭해 할 수 있잖아.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알겠지?" (지금 선생님의 글을 보고 있는 진원, 수한 두 명의 학생들아~ 비밀로 해주렴~^^)


"ㅋㅋㅋㅋ 네~"


점심식사를 하면서, 민재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학교 생활, 친구들, 게임, 심지어는 좋아하는 여자친구 얘기까지! 뭔가 민재와 돈독해진 느낌이랄까?


"선생님!"


"왜?"


"저 이렇게 선생님이랑 단 둘이서 밥 먹는 거 생애 처음이에요. 저 지금 너무 감격스러워요 ㅋㅋㅋ 선생님 감사합니다!"


"야, 감사하면 좀 잘해 인마. 너 이렇게 선생님한테 맛있는 거 얻어먹고 또 숙제 안 하거나 선생님 말 안 들으면 그건 배신행위야 알겠어? 안 되겠다, 말 나온 김에 서약서 하나 쓰자."


민재에게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 지켜야 할 약속들을 공책에 적도록 했다.

데일리 리포트 매일 쓰기, 하루 독서 30분 이상하기, 단원평가 점수 90점 이상 받아보기, 통지표에 보통이 3개 이하로 나오게 하기 욕설 하루 3번 이하로만 사용하기, 이렇게 5가지가 올해 민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민재야, 근데 만약에 이거 못 지키면 어떻게 할 건데? 또 저번처럼 약속만 하고 안 지키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선생님. 저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아우, 그럼 선생님. 만약에 제가 약속 어기면 바로 포경수술할게요. 이건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포경수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진짜 약속한 거다. 앞으로 한 번 잘하는지 지켜보겠어!"




저녁이 되어 정말로 민재가 e학습터와 과제를 했는지 체크해보니 정말로 했다! 심지어 그동안 안 올리던 데일리 리포트도 학급 밴드에 올렸다!

민재가 밴드에 올린 데일리 리포트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민재 어머니에게서 이렇게 문자가 왔다.

민재 어머니가 보내오신 문자


아침부터 기분 좋은 문자다! 민재가 어머니한테도 학교 생활 잘할 거라고 공부 열심히 할 거라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무언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민재야.
선생님은 네가 뭐든 지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항상 응원한다. 화이팅!



#학생상담 #학생의변화 #학생의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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