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과거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 때를 회상해보자. 선생님이 제목에 나의 꿈이라고 적힌 종이를 나눠주신다. 우리는 꿈을 적는 칸에 각자 원하는 직업을 적고 옆 칸에는 그림을 그린다. 축구선수, 아나운서, 판사, 변호사, 의사, 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들이 나온다. 당시 우리 반에서는 PC방 주인이 압도적 1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초등학교 교실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적으라고 한다. 아이들은 빈칸에 자신의 장래희망(직업)을 적는다. 패션 디자이너, 유튜버,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이돌, 초등교사 등 다양한 직업들을 희망한다. 정성스럽게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담긴 그림까지 그려서, 교실 뒤판을 장식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에 회의감이 들었다. 다음은 작년에 우리 반 아이중 한 명과 했던 대화 내용이다.
선생님: 채원아(가명), 너의 장래희망이 뭐니?
학생: 초등학교 선생님이요.
선생님: 올~~~ 초등학교 선생님은 왜 되고 싶은데?(본인 얘기 나오길 은근 기대 중!)
학생: 엄마가 편하다고 해서요. 돈도 적당히 벌 수 있고요.
선생님: (...) 어떤 선생님이 될지, 그리고 선생님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봤니?
학생: (...) 몰라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서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말만 했다.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친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 현재의 자신들에게 너무나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주변 친구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아는 한 내 주변에 지인들 중에 초등학교 때의 꿈을 이룬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들의 생각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장래희망=꿈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장래희망: 장차 하고자 하는 일이나 직업에 대한 희망.
-꿈: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위의 사전 의미를 보면 장래희망은 직업을 뜻하고 꿈은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 생각을 해보면, 장래희망은 꿈에 포함이 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꿈의 의미는 다르다. 첫째, 꿈은 나침반처럼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삶의 여정을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우리는 꿈이라는 나침반을 통해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꿈을 통해 시간을 절약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둘째, 꿈은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내 주변의 친구들 중에, 요새 슬럼프를 겪는 친구들이 많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고, 대학생 때는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막상 다 이루고 나니 허무하다고 했다. 꿈을 이루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잠깐의 기쁨만 누릴 뿐, 금방 마음이 공허해졌다고 한다. 대학이나 직업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꿈이 될 수 없다.
셋째, 꿈은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정체성) 중심이어야 한다. 물론, 승진이나 돈을 100억 이상 버는 것처럼 결과 중심의 목표는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꿈이 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꿈이 된다면, 목표는 이룰 지라도 다른 삶의 많은 부분들이 희생될 확률이 크다. 내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어 보겠다.
승진을 해서 교장이 되는 것이 꿈인 40대 후반 A교사. 20대 후반 즈음, 동기나 후배들보다 못나 보이기 싫어서 남들보다 빨리 승진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 승진 점수(벽지 점수, 학생 지도 점수, 연구대회 점수, 학교폭력 가산점 등)를 채우기 위해 악착 같이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때로는, 점수 때문에 동료 교사들과 다툼도 있었다. 승진 라인을 잘 타기 위해서 밤새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교장으로 승진한다. 근데, 주변을 돌아보니 엉망진창이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그동안 과로와 술로 인해 엉망이 된 자신의 몸이 보인다. 학교에 가니, 이미 마음이 떠난 선생님들은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다. 원하던 목표는 이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결과는 미래이고, 과정(정체성)은 현재이다. 미래를 위해서 달리다 보면, 현재를 외면하기가 쉽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현재 속에는 다양한 기회들이 계속 생겨난다. 하지만 미래에 집중을 하다 보면, 현재의 다양한 기회들을 놓치기 쉽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만다.
오랫동안 고민을 한 끝에, 우리 반은 꿈을 적을 때 장래희망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적기로 했다.
-학생 A: 초등교사(x),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솔선수범하는 사람(o)
-학생 B: 유튜버(x),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감동을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o)
-학생 C: 장래희망이 없음, 꾸준한 독서와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하는 사람(o)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적을 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적는다. 이들에게 꿈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매 순간순간, 이들은 꿈을 이룰 수 있다. 학생 A 같은 경우는, 공부가 어려운 친구의 공부를 도와줄 때,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들을 때마다 자신의 꿈을 이룬다. 학생 C는 특별한 장래희망이 없더라도, 매일 꾸준하게 성장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룬다. 실력이 쌓이고 쌓여, 훗날 더 많은 기회들이 찾아올 것이다.
10년 뒤에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이들이 멋지게 자랄 수 있도록 앞으로 남은 8개월 동안씨앗과 거름을 잘 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