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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Sep 25. 2020

아빠가 유일하게 폭군이 되는 순간

우리 가족은 5년 전부터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직장에 취직한 기념으로, '아들돈 한 번 따먹어보자!'하고 시작한 고스톱은 이제 거의 가족모임의 고정행사가 되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세월이 지나 화투 멤버는 엄마, 아빠, 나로 구성된 3명에서 엄마, 아빠, 나, 와이프, 제매, 이렇게 5명으로 늘어났다.


"아싸~ 원고~"


"투고!"


"쓰리고!"


나의 신난 목소리와 대조적이게 엄마, 아빠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냈다.


"방금은 네가 나한테 광을 풀어줘야지! 여기 봐봐. 방금 광 줬으면 3광이잖아!!"


"광이 없는 걸 어떡해요?"


"광 없다고요? (얄밉게) 정보제공 감사요~~ 4고~~~~"


"아니, 광이 없는 걸 왜 또 말해? 아, 진짜 화투 이상하게 치네..."


결국 4고까지 가서 상한선 2만원을 잃고 고스톱 판을 박차고 나가는 우리 아빠... ㅎㅎ



옆에서 가만히 구경을 하던 와이프가 잠시 휴식타임에 나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아버님, 은근히 승부욕이 엄청 강하시네... 평소에는 다 양보해주시고 져주시더니..ㅋㅋㅋ"

와이프 말대로 우리 아빠는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천사라고 불릴 만큼, 사람들에게 자상하고 따뜻하신 분이다. 와이프가 나보고 아버님 성격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아빠는 고스톱판에서 만큼은 배려남에서 마초남으로 돌변한다. 눈빛과 말투 자체부터 달라진다.



"어어어어어어!!! 잠시 멈춰봐! 방금 패 두 장 뒤집은 거 맞지? 맞지? 이거 인정 못한다. 나가리! 나가리!!"

"아니, 실수로 그럴 수도 있죠! 흐름상 아무 문제 없잖아요!"

"그런 게 어디있어! 두 장 뒤집었으면 나가리지!"

엄마와 함께 편을 먹어 순식간에 판을 엎어버리는 우리 아빠...


"잠시만요. 방금 흔든 거 점수 계산 안 했어요!"


"이미 지나간 건 끝이다!"

"아니, 불과 3초 전이잖아요..."


"한 번 말하면 끝이라니깐!"

그리고 막상 본인이 점수 잘못 불렀을 때는 모르는 척 점수를 일일이 다 챙기시는 우리 아빠...


그런 아빠에게 엄마가 한마디를 하셨다.


"아니, 당신은 평소에는 그렇게 사람 좋은 사람이 고스톱만 치면 왜이리 흥분을 해요?"


아빠도 멋쩍으신지 그냥 웃으신다. 잠시후 하시는 말씀,


"게임은 진지하게 해야지.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야."


"아니, 자칭 냉정하신 분이 그렇게 흥분을 하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들, 자~ 받아라. 경피(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돈)"


"엥? 저 안 받아도 괜찮아요."


"오늘 너 많이 잃었잖아~ 줄 때 받아라."

"아... 안 그러셔도 되지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ㅎㅎ 오예!"


불꽃 튀기는 고스톱판이 끝나고 다시 자상한 아빠로 돌아온 우리 아빠! 아빠 덕분에 더욱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가족 화투놀이!


하... 근데 아쉽게도 이번 추석은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댁에 방문을 못한다... 무엇보다 다들 고스톱을 치지 못 해서 아쉬워하는 상황이다... ㅠㅠ 이참에 온라인 수업처럼 온라인 고스톱이라도 쳐볼까? ㅎㅎ



#화투 #아빠 #가족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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