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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Sep 29. 2020

물아일체가 이런 느낌이구나.

아침 출근길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켜고 e학습터 학습방 열고, zoom으로 애들 출석체크하고... 연수 듣고, 교실 청소하고, 오후에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촬영해야지!'


'아까 쓴 글이 오늘 반응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요새 라이킷도 많이 없는데(좋아요 중독자)...'


'저번주 미장(미국시장)이 괜찮았는데, 오늘 우리나라 증시는 어떨까? 많이 오를까?'


'오늘은 퇴근하고 바로 달리기 하는 날인데... 아... 운동하기 싫다...'


'아, 저기 앞 차는 왜 이렇게 늦게 가는 거야?'


'방금 쓴 글 조회수는 좀 나왔을까?'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끊임없이 조잘대는 머릿속 목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계속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생각을 멈추면 저 생각이 튀어나오고, 저 생각을 멈추면 또 다른 생각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고요한데, 이미 내 머릿속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아직 아침일 뿐인데, 벌써 뇌용량의 80% 이상이 차 있는 느낌이다... 


학교 3~4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차를 주차하고,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자연물을 활용해, 내 머릿속을 비워볼 생각이다. 예전에 책에서 배운 명상 기법을 사용해보려고 한다.

출근길


이름하여 사물에 이름 붙이지 않기!


지금 현재 내 주변에 보이는 자연물에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상태로 걷기로 했다. 마치 아기처럼,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무슨 나무인지 처음 배우는 아기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소나무지만, 소나무라는 관념을 끌어오지 않았다. 대신 내 눈 앞에는 커다란 갈색 기둥과 푸른 녹음들이 보였다. 땅바닥을 제 나름의 빠른 속도로 기어 다니는 작고 검은 생명체들도 보였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푸른색 물체들이 춤을 춘다. 


'와... 너무 아름답다.' 


이 짧은 3분으로 나는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장엄함, 기운, 그리고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온전하게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단지 이름을 붙이는 것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봤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 목소리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요한 배경이 나를 감쌌다. 마음이 평온하다.



3년을 넘게 생각 없이 매일 오갔던 출근길이 새롭게 보였다. 아름다웠다. 방금 내가 본 세상은 생각에 여과되어 나온 죽은 세상이 아닌,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활기찬 세상이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내가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구나! 생각에 빠져서, 이 아름다움과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던 거구나!


아, 물아일체가 이런 느낌이구나!



#명상 #물아일체 #이름붙이지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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