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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Oct 26. 2020

9년 전 제자에게서 온 문자

몇 달 전, 내 생일날에 낯익은 이름으로 카톡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대학생 시절 가르쳤던 과외 제자, 영근(가명)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우리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수를 하고 갓 교대에 입학한 21살의 나는 우연히 같은 과 선배에게 수학 과외 학생을 소개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영근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영근이는 14살, 중1이었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영근이는 딱 초등학생 정신연령의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음악, 웹툰, 게임 등 서로 관심사도 비슷해서, 형, 동생처럼 정말 친하게 지냈다. 과외 시간에는 공부 말고도 다른 관심사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서 대학생 과외 비추천... ㅎㅎ) 과외가 아닌 날에도 서로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과외 중, 같이 게임을 하다가 들켜서(?!) 영근이 엄마에게 같이 혼난 적도 있었다.

"아들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마치 아들 두 명을 키우는 거 같네요!"


이런 내가 편한지 영근이는 한 번씩 나에게 형이라고 불렀고, 그때의 난 형이라는 호칭을 거부했다.

"(장난스럽게)야, 어디서 감히 선생님에게! 나중에 너 대학생 되면, 그때 선생님한테 형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줄게. (허세 부리며) 그때는 인마, 쌤이 인생 선배로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술도 사주고 할게."


"알겠어요. 쌤... 근데 저 술은 안 마실 건데요? 술을 왜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과연... 그때 가서 다시 물어본다! ㅎㅎ"



이렇게 많이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영근이의 수학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임용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외를 그만둘 때까지 무려 3년 동안 과외를 계속하게 되었다.


"쌤, 나중에 임용합격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주세요."


"그래~ ㅎㅎ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너무 놀지만 말고~ 넌 똑똑하니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성과 거둘 수 있을 거야. 종종 연락하자!"




그 뒤로 몇 번 연락하다가, 내가 군대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이번 연락은 무려 5년 만에 온 것이었다.


5년 만에 연락을 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화... ㅎㅎ 마치 어제 과외를 하고 오늘 연락을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초딩 티를 못 벗었던 중학생 아이는 이제 어느덧 23살,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과외하던 당시 앵무새도 키우고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더니 수의대생이 되었다고 한다. 풋풋한 21살의 청년이었던 나도 이제 30살, 곧 결혼을 앞둔 몸이 되어 있었다.(지금은 결혼했지만ㅎㅎ)


너무 반가워서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학 생활, 여자친구, 연애 조언, 미래 꿈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소재가 참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했어도 입시랑 게임 얘기만 했던 거 같은데... ㅎㅎ


"와... 진짜 세월 빠르다. 너 과외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형."


"너 근데 형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냐?"


"그런가? ㅋㅋㅋ 형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7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요?"


"그래, 너 편한 대로 해라. 대학생 되면 형이라 불러도 된다했으니... 그나저나 너 술은 마시냐? ㅎㅎ"


"술 당연히 마시죠. 대학생이잖아요~~~ 청춘을 즐겨야지."


"너 중학생 때는 그렇게 안 마신다고 난리를 치더니~~ (웃음)"


"에이~~~ 그건 어릴 때고~~~ 나중에 술 한 잔 사줘요. 형"


"형이 술은 끊어서 안 되고, 나중에 밥 한끼 거하게 쏠게. 언제 형 집에 놀러와~ ㅎㅎ"



이렇게 영근이와 카톡을 끝내고 나니,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와... 9년 전 과외 제자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이야... 와...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계속 변하는구나!'


지금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도 언젠가는 영근이처럼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소름이 돋았다. 

'나중에 우리 반 애들이 크면 어떤 모습일까? 이 친구들이 어른이 돼서 나를 찾아올 때면, 그때쯤 나는 40대 아재가 되어 있겠지? 헐... 소름..."


그러고 보니, 5년 전 첫 제자들(당시 11살)과 성인이 되면 해외여행 가기로 약속한 날짜가 이제 4년도 안 남았다. 그때 당시에는 9년이면 한참 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 참 빠~~르다.

 


#9년전제자 #과외학생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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