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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13. 2020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2달 전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에 참여를 하시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로 찾아뵈었다. 우리 부부를 보기 위해,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집까지 오셨다고 한다. 찾아뵌 지, 거의 반년 만이다. 할아버지는 올해 들어서 치매가 심해지셔서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계시고, 할머니는 큰집에서 노인 유치원을 다니고 계시는 상태였다.


2시간 차를 타고 부모님집에 도착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왔어요~~ 손주 신혼여행 갔다 왔어요~~"


근데 할아버지의 표정이 이상했다. 전혀 반가운 기색이 없었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닌 누고?"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손주 00이에요."


"누구라고?"


할아버지는 나를 못 알아보셨다. 충격이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했어도, 바로 손자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한참을 고민하시다, 갑자기 미안해하시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아... 내 손주 00아... 아... 내가 네 이름도 지었는데... 내가 그걸 기억 못 하면 안 되지..."


손주의 손을 감싸 쥐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우리 공부 잘하는, 학교 선생님인 우리 손주... 어이구 내 새끼... 학교는 잘 다니고 있제?"


"네, 할아버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어요. 얼마 전에 결혼도 했어요. 여기 손주 며느리도 같이 왔어요."


"아버님, 안녕하세요. 손주며느리, 000이라고 합니다."


"(웃음) 이쁜 각시를 데리고 왔네. 너 학교 잘 다니고, 몸만 건강하면 됐다. 나는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린다."


"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창창하신데... 요즘 100세 시대인데, 100세 되려면 한참 남았어요."


"내가 지금 치매인데, 뭘 하겠노? 너희들만 잘 지내면 된다."


몇 시간 뒤, 할아버지는 아까 나눴던 대화를 다시 잊어버리셨다. 집에 간다고 인사를 드릴 때도, 할아버지는 손자를 못 알아보셨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할아버지 생각을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어제저녁, 사진첩을 정리하다 우연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찍은 내 어릴 적 사진을 발견했다.


마음이 먹먹하고 무겁다. 괜스레 할머니, 할아버지께 죄송스러워진다. 이렇게 손주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못난 손주는 2개월 전 찾아뵌 것을 빼고는 연락조차 안 하고 있다. 그렇다. 코로나니, 사는 게 바쁘다니 하는 것들은 다 핑계에 불과하다. 그냥 '안' 한 거다. 이런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


할아버지, 할머니 죄송합니다...


오늘 퇴근길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드려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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