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중2, 당시의 내 키는 172cm였다. 중학생치고 제법 큰 키였다.(물론 그 뒤로 거의 크지 않았지만...) 반면 큰 키에 비해, 내 다리는 엄청 짧았다.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고... 마치 웰시코기 같았다.
"야, 내가 키는 안 돼도 너보다는 다리 길이 길 거 같은데?"
"뭔 소리야. 이 161센티 땅꼬마놈이. 한 번 재어보자. 다리 짧은 사람이 딱밤 맞기, 콜?"
헉... 친구의 골반이 내 허리에 닿는 게 느껴졌다. 하... 이 치욕스러움이란...
"일루 와. 딱밤 맞아야지~~~ 어디로 도망가~~~~"
그날 이후, 중학생 내내 숏다리라는 별명은 나를 따라다녔고, 짧은 다리는 당시 내 중학교 인생 최대의 고민이 되었다.
나는 인정하기가 너무 싫었다. 매일 같이 친구들이 숏다리로 놀려서 상처 받는 현실들을, 옷가게에 가면 상체 치수보다 2치수는 낮춰서 바지를 사거나, 무조건 길이 수선을 해야 하는 부끄러운 상황들을... 평생 이렇게 숏다리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중에 여자들이 내가 다리가 짧다고 안 만나주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난 키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 평생 노총각으로 살다, 늙어 죽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다리 길이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을 보고 매일 다리 마사지도 해보고 농구, 줄넘기도 해보았다. 상대적으로 긴 상체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허리도 구부리고 다녀봤다. 하지만 모두 다 소용없었다. 혹시나 키가 좀 더 크면서 다리가 자라지는 않을까 기대해보았지만, 오히려 상체가 더 자라났다...
노력을 해도 안 되자, 나에게 짧은 다리 유전자를 준 엄마, 아빠를 원망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유전적인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짧은 다리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았다.
'그래, 내가 다리가 짧다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난 다리가 짧은 대신, 피부가 하얗잖아? 키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그리고 다리가 짧은 게 뭐 어때서? 원래 동양인은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잖아? 내가 바로 토종 한국인이다, 이 말이여!'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고 나자, 거짓말 같이 친구들의 놀림도 사라졌다. 더 이상 내가 다리 길이에 신경을 안 쓰니, 신기하게 타인들도 그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다 우연히, 다리 길이에 대한 얘기가 나와도 이것은 더 이상 나에게 타격을 주지 못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리가 짧은 나 또한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자기야, 자기 다리 짧은 거 알아? ㅋㅋㅋㅋ 너무 귀여워. 웰시코기 같아."
다리가 짧아서 연애도 하지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한 중학생 때의 내가 생각났다. ㅎㅎ
만약 그때 내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연애는 할 수 있었을까? 평생 콤플렉스로 타인의 아무 의도 없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겠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마지막으로 내 짧은 다리를 귀엽게 봐준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해♥
#숏다리 #콤플렉스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