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Dec 16. 2020

아이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작년에 난 교직생활 처음으로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4학년 담임에서 5학년 담임으로 아이들과 함께 진급을 했다. 반 아이들의 명단을 봤는데, 도움반 학생의 이름이 보였다. 작년에 옆 반이었던 의찬이(가명)였다. 의찬이와는 예전부터 같은 반을 해보고 싶었기에,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옆 반 담임으로서 의찬이를 봤을 때, 의찬이는 도움반 아이가 아닌 일반학급 학생인 것처럼 보였다. 전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난독증 판정을 받은 것 치고는 읽고 쓰기도 잘하고, 학습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는 일반 학급 학생과 차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의찬이와 바로 상담을 진행했다. 테스트해본 결과, 전 담임선생님의 말씀대로 읽고 쓰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국어 진단평가 결과도 미도달이 아닌 도달이었다. 의찬이에게 물었다.


"의찬아! 읽고 쓰기도 다 잘하는데 왜 도움반 선생님은 네가 글을 못 읽는다고 하시지? 난독증이라는 결과가 선생님은 이해가 안 되는데..."

 

"..."


알고 보니, 그동안 일부러 시험을 못 친 거였다. 도움반에서는 의찬이가 모범생이었다. 항상 발표도 의찬이가 다하고 선생님의 칭찬도 의찬이의 독차지였다. 하지만 일반학급에서는 달랐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학습이 훨씬 달렸고, 담임 선생님은 의찬이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의찬이는 일반학급보다는 도움반에 더 머물고 싶어 했기에, 시험을 일부러 망친 것이었다.


의찬이는 도움반이기 때문에, 학습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큰 사고 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웠다는 전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일기, 독서록은 4년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고, 그냥 교실 안에서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전 담임선생님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반에 신경 써야 할 학생들이 워낙 많고, 이 아이는 워낙 챙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기본 공부습관, 생활습관, 심지어는 집안 환경 등 모든 것에 관여를 해야 했기에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한 아이가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었다.


의찬이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의찬아. 선생님 생각에는 네가 올바른 방법으로 조금 노력만 하면, 다른 친구들만큼 공부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매 번 수업시간에 멍하니 있는 거 답답하지 않니? 조금만 공부하면 수업 내용도 금방 이해될 텐데...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한 번 도전해볼래?"


고맙게도 의찬이는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목표는 올해 안에 수업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도움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의찬이의 도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미 반 아이들은 의찬이가 도움반이라는 것, 의찬이의 집안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숨기는 것보다 차라리 말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반 아이들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의찬이의 공부를 도와주었다.


먼저 학습습관을 점검해보았다. 의찬이는 초등생활 4년 동안 숙제를 제대로 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도움반이라는 이유로 혼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내 생각에 일기나 독서록 같은 숙제의 경우는 지금의 의찬이 능력으로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니 곧잘 써왔다.


그동안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도 펴지 않고 멍을 때렸다고 했다. '내 수업시간에는 절대 그런 모습은 용납 못 한다.'며 바른 자세로 교과서를 펴고 수업에 집중하도록 습관을 길들이도록 했다. 처음엔 힘들어하더니, 몇 번 칭찬을 받으니 곧잘 따라왔다.


생활습관도 점검해보았다. 의찬이는 집에서도 관리가 잘 안 되는 학생이었다. 하루에 집에서 게임을 7시간 이상씩 했다. 양치질도 지난 3년 동안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장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협조를 요청했다. 의찬이도 게임을 2시간 이내로 줄이기로 약속했다.


의찬이는 수학이 정말 약했다. 덧셈, 뺄셈도 미숙했지만, 구구단을 아예 하지 못했다. 국어보다 수학이 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3주의 시간을 주고 구구단을 외우도록 했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검사를 했고, 까먹으면 다시 외우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의찬이와 같은 반이 된 지 한 달째, 아침 출근길에 의찬이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지금 애가 저를 때립니더. 학교 가기 싫다고 저를 때리고 있습니더! 도와주이소!"


"집주소가 어딘가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의찬이 집에 도착을 하니, 경찰관 분들이 와계셨다.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의찬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구구단 외우기 싫다고,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받아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학교에 가라고 하자, 할머니에게 대들었다고 한다.


내가 봐서는 경찰에 신고할 정도는 아니었다. 의찬이는 그렇게 폭력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경찰관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별거 아닌 일에도 자주 신고를 하신다고 한다.


"의찬 할머니! 경찰관분들, 바쁘신데 이런 일로 신고하시면 안 돼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앞으로 저한테 무조건 연락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의찬이는 지금 바로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차 안에서 의찬이와 대화를 했다. 의찬이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기한테 구구단을 가르쳐주는 것도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예전에는 학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지금은 계속 공부를 해야 하니 고통스럽다고 했다. 게임도 매일 7시간 하다가 2~3시간으로 줄이니,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사라져서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자기는 공부가 하기 싫단다... 나중에 자기 인생이 망해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냥 게임만 하다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구구단은 안 외울 것이고, 게임도 하루에 7시간 이상씩 계속할 거라고 했다.


허탈했다. 그리고 아쉬웠다. 충분히 능력이 있는 친군데, 그냥 포기해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선생님이 네가 마음만 먹으면 향후 몇 년간 책임지고 도와주겠다. 조금 공부량을 줄여줄 테니, 조금씩 해보자.' 등 30분 간 설득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9시가 넘어서 의찬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갔다. 나와 의찬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반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의찬아 방금 있었던 일 친구들한테 말해줘도 되지? 그동안 친구들이 도와줬으니깐 친구들도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끄덕끄덕)


"얘들아, 아까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결국 의찬이는 공부를 포기하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하네. 선생님이 30분 동안 설득했는데, 안되네... 마지막으로 너희 생각을 좀 듣고 싶다. 너희들이 진정한 친구로서 의찬이에게 조언 좀 해줬으면 좋겠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잠시 후, 아이들이 손을 들고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의찬아, 나도 처음에는 구구단 외울 때 너무 힘들었어. 계속 외워도 까먹고, 또 까먹고,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근데 그것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조금만 참아봐!"


"의찬아. 지금까지 했던 게 너무 아깝지 않니? 내가 도와줄 테니깐 같이 해보자!"


"지금 당장에는 게임하고 노는 게 좋을 수도 있는데,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해봐. 지금 논만큼, 나중에는 힘들 거야."


"의찬아. 내가 작년부터 너랑 같은 반이었는데...   (...)   흑...(눈물)"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할 수 있는 친구가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작년에 현실을 회피하고 게임만 했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1달 동안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노력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반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중에 애들 말을 들어보니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친구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 슬펐다고 한다.


울면서 1시간 동안 반전체가 의찬이를 설득했다. 종이 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의찬이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게임 얼마 정도 줄이면 될까요? 다시 시작해볼게요."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진심이 의찬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 날 저녁, 나는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그동안에 내가 의찬이에게 했던 교육을 복기해 보았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학교 공부가 힘들었던 걸까? 공부 강도가 그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을까?"


(한참을 고민)


"아차..."


의찬이는 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심지어 숙제를 해오라는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집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제지 없이 잠도 안 자고 12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였다. 그렇게 살아온 아이에게, 매일 같이 숙제를 내주고 게임도 줄이도록 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교육 행위는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 뛰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내 마음이 너무 조급한 탓도 컸다. '내년이면 6학년인데, 초등학생에서 벗어나서 중학생이 되면 과목별로 선생님들이 나뉘기 때문에, 초등 담임만큼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 텐데, 그전에 내가 얼른 잡아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조급함으로 인해, 난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교육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내 교육에 반성을 하고, 기존의 교육방식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먼저 의찬이를 배려하는 교육을 하기로 했다. 나의 시각도, 또래 아이들의 시각도 아닌 의찬이의 시각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또래 아이들에게 매일 숙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찬이는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지만, 한 번도 집중을 안 해 본 의찬이에게는 당연한 소리가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을 7시간 이상 하는 것은 게임을 엄청 많이 하는 것이었지만, 의찬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생활 패턴, 학습 패턴이 망가져 있는 의찬이가 학교 수업에 잘 적응할 때까지 넉넉히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일기, 독서 같은 경우는 매일 써오되, 다른 학급 친구들 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1, 2줄만 써도 허용해주었다. 일단 성공의 경험을 맛보고 숙제를 해오는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몇 번 자세가 흐트러지는 게 보여도 어느 정도 허용적으로 넘어가 주었다. 반면 열심히 참여를 하는 경우에는 칭찬을 해주었다. 컴퓨터 게임도 하루아침에 끊는 것이 아닌, 5시간, 3시간, 1시간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도록 했다.   


더 이상 조급하지 않고 의찬이가 따라올 때까지 믿고 기다렸다.




(1년 뒤)


"의찬아, 너 학기초에 구구단 외우기 싫어서, 학교 안 오고 자살하고 싶다고 한 거 기억나?"


"아... 기억나요... 제 흑역사... 진짜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저도 그때의 제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가요."


의찬이는 그 뒤로 일기장, 독서록도 꼬박꼬박 써왔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곧잘 했다. 물론 구구단도 다 외웠다. 과학 단원평가도 생애 처음 쳐서, 70점 이상 받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발표도 하는 등 많이 변했다. 그때가 먼 옛날 과거의 이야기 같다는,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찬이. 더 이상 의찬이는 예전의 의찬이가 아니었다.  


지난 1년 동안 의찬이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한 맞춤 교육을 한 결과, 의찬이는 변할 수 있었다.


 



그날의 의찬이를 떠올리며, 지금의 내 교육을 반성해본다.


내가 또 조급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지식의 저주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의 개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을 하고 있는지.




#변화 #기다림 #성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