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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Dec 13. 2020

#2 우리들의 행복한 미술시간

선생님, 제가 미술 수업으로
하고 싶은 것들 준비해왔는데요...


어느 날 미화부장인 시현(가명)이가 나를 찾아와, 자신이 준비해온 미술 준비물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이 종이는 슈링클스라고 하는 건데요. 플라스틱 재질 종이인데, 오븐으로 구우면 크기가 7분의 1 정도로 줄어들어요. 이걸로 애들이랑 키링이나 휴대폰 고리 만들고 싶어요. 근데 선생님이 좀 준비해주셔야 할 게 있어요."


"뭔데?"


"슈링클스 꾸밀 핸드폰 열쇠고리 줄이랑 오븐이요. 저희 집에 오븐이 없어서..."


"그래? 선생님 집에 오븐 있는데! 열쇠고리 줄도 바로 주문해 놓을게~"


(그날 저녁)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있는 오븐을 학교로 들고 가려 하다가 아내에게 딱 걸렸다.


"아니, 우리 음식 먹을 때 쓰는 오븐을 플라스틱을 굽는데 쓴다고? 어떤 유해물질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안 돼!"


"아... 맞다... 유해물질... 생각을 못했네... 미안... 음... 그럼 오븐 말고 다른 건 없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오븐 대용으로 힛툴이라는 기계가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집안일(설거지, 집 청소,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과 자기계발해서 번 돈으로 바로 힛툴을 질렀다!


이제 미술수업을 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학교 미술수업 당일)


"얘들아, 선생님이 색연필이랑 그리고 싶은 캐릭터 도안 가지고 오라고 했었지? 자~ 준비 잘해왔는지 한 번 보자."


(잘 준비해온 아이들)


"아, 그리고 이번에는 미화부장인 시현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핸드폰 고리 만들고 싶다고 직접 사비로 슈링클스를 사 왔어! 박수!"


"와~~~~ 시현아 고마워! 슈링클스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재미있겠다! 시현아 고마워!"


"그리고 이 수업을 위해서 선생님도 피 같은 돈으로 힛툴과 키링을 샀단다. 2주일 내내,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면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말이야. ㅋㅋ 봐봐. 선생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세상에 이런 선생님이 어딨냐? 빨리 선생님도 칭찬해줘~~~~ (괜히 생색내기)"


(아이들 웃음)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 그럼 바로 수업 시작해볼까?"




두 번째 그림의 돌려 쓰는 색연필 보다는 연필 색연필을 권장한다.


미리 준비해온 캐릭터 도안을 보고 슈링클스의 거칠거칠한 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 도안을 보고 그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림을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이때 돌려 쓰는 색연필보다는 연필 색연필이 더 낫다. 돌려 쓰는 색연필은 힛툴로 열을 가했을 때, 녹아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그린 그림을 가위로 자르고 펀치로 구멍을 뚫는 아이들


"그림 다 그린 친구들은 가위로 잘라주세요. 그리고 펀치기로 링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세요."



자, 이제 대망의 히팅시간! 미리 준비한 힛툴과 바구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슈링클스에 열을 가했다.


점점 작아지는 슈링클스


"우와! 신기하다!"


점점 작아지는 슈링클스가 신기한 지, 내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얘들아, 잠깐! 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우리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지해야지!"


그때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


zoom을 활용해서,


zoom을 활용해서 교실의 TV를 통해, 슈링클스를 굽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모두가 실습 장면을 볼 수 있고, 거리두기도 되고 1석2조였다.


돌려 쓰는 색연필을 사용하면 이렇게 녹아서 번질 위험이 크다.


중간에 종이가 휘어서 붙거나, 색연필이 녹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똑똑한 우리 반 아이들 덕분에 무사히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검은색 번진 부분은 녹은 색연필 때문에... ㅜㅜ


다 만든 작품들을 한데 모으니 엄청나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총집합이다. 요새는 어몽어스 캐릭터가 대세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총집합




"얘들아, 집에 좀 가라."


"아... 선생님 이것만 하고요... 너무 재미있단 말이에요."


몇몇 아이들이 학교가 마친 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에 가지를 않는다. 학교에서 오랜만에 미술활동을 하니 너무 즐겁다고 한다. 아까 자르고 남은 슈링클스를 재활용해서 계속 작품을 만드는 아이들...


"아... 선생님... 그냥 매일 학교에 나오고 싶어요..."


결국 이 아이들은 3시 반까지 학교에 남아있다가 그제야 하교를 했다.



이제 아이들의 졸업식 때까지 실제 등교일이 5일밖에 안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도 3단계로 격상되면 무용지물이다...


불과 1년 전만 했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하지가 않다. 매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함을 느낀다. 조금만 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었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아이들이 감염 걱정 없이 학교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미술수업 #키링만들기





https://brunch.co.kr/@lk447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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