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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14. 2021

나도 가끔씩은 우울할 때가 있다.

2달 전 즈음, 우리 반 학생 지현(가명)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현이는 우리 반의 모범학생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데일리 리포트, 줌터디(저녁에 줌에서 아이들과 같이 하는 자습 스터디) 등 내가 추진하는 활동들을 우리 반에서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항상 나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제일 먼저 실천하는 기특한 학생이었다.


"선생님, 지현이 엄마입니다. 여쭈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려요."


"오, 지현 어머니~ 반갑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 연락하셨는지...?"


"다름이 아니라, 요새 지현이가 저녁에 선생님이랑 줌터디(저녁에 줌에서 아이들과 같이 하는 자습 스터디)를 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이랑 대화를 잘 안 하거든요. 저녁만 먹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리고 줌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폰 사용도 부쩍 늘었어요. 어젯밤에도 11시 넘어서까지 폰을 사용하고... 애 아빠는 줌터디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고 그러네요. 왜 담임은 그런 쓸데없는 걸 만들어서, 애를 이상하게 만드냐고..."


순간 당황했다. 다 때려치우라니... 쓸데없는 거라니... 이 말들이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 그러셨구나... 어머니, 일단 줌터디는 의무가 아니에요. 교육과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든 일종의 환경설정이자 도구입니다. 지현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필요 없으면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지현이가 부모님과의 대화를 계속 피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스마트폰 사용 문제는 저도 좀 걱정이 되네요."


어머니와 한참 동안 지현이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무작정 폰 사용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율성과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게 아이와 함께 스마트폰 사용 규칙(일정한 시간에 폰 사용하기, 해야 할 일을 다하면 폰 사용, 규칙을 어겼을 때의 페널티 등)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드렸다.


그리고 지현이가 계속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 제가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충분치 않을 때 아이는 스마트폰 사용 같은 딴짓에서 심리적 영양소를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지현이 같은 경우에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의 대부분을 친구와의 채팅으로 보내잖아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학교에도 1번밖에 오지 않아 생긴 부족한 유대관계를 채팅을 통해 채우려고 한 게 아닐까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 생각에도 지금 지현이의 상황에서는 줌터디는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지현이한테도 제가 꼭 전달할게요. 줌터디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그리고 저녁에는 꼭 가족들이랑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겠습니다."


지현 어머니께 지금 상황에 필요한 책(집중, 학습 환경설정과 관련)도 한 권 추천해 드렸다.(며칠 뒤 지현이가 읽고 있는 걸 발견했지만...)



다음 날, 지현이와 상담을 했다.


"지현아, 어제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요즘 네가 가족들이랑 대화도 안 하고 바로 방에 들어간다고 들었어. 왜 그런 거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아빠랑 대화하는 게 싫어요... 맨날 잔소리만 하고... 잘한 부분은 칭찬 안 하고, 맨날 못한 부분만 뭐라 하고... 엄마, 아빠는 저를 싫어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말을 해도, 제 얘기를 잘 안 들어주세요..."


"선생님 생각에는 부모님이 너를 혼내기 위해서 혼낸 게 아니라, 지현이 네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러신 거 같은데? 그리고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어제 전화 통화할 때도 느껴지더라."


(또다시 눈물)


지현이와 오랜 시간 동안 상담을 했다. 지현이가 저녁 시간에 부모님과 대화를 피한 건 스터디 때문이 아니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부모님과의 건강한 소통의 부재였다. 지현 어머니와 다시 상담을 하며 지현이의 생각을 전달해 드렸다.


"아... 지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네요... 제가 칭찬은 잘 안 하는 편이어서... 아이를 좀 더 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한 번 지현이랑 얘기를 나눠봐야겠네요."


얼마 뒤, 지현이에게 물어보니, 부모님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지현이는 더 이상 줌터디에 참여하지 않았다. 매일 쓰던 데일리 리포트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오늘은 졸업식 전날이다. 내일 졸업식 당일은 정신이 없을 거 같아, 오늘 줌과 전화통화로 아이들과 한 명씩 작별인사를 했다.


지현이의 차례가 왔다.


"지현아, 졸업식 하니깐 기분이 어때?"


"그저 그래요."


"요새 부모님이랑 사이는 어때?"


"요즘에는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이제 줌터디 하는 시간에는 주로 뭐하고 보내?"


"대부분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는 거 같아요."


"오~~~ 잘 됐다. ㅎㅎ 근데 요새 학급 밴드에 데일리 리포트를 잘 안 올리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


"아빠가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는 다 하지 말래요. 데일리 리포트 밴드에 올리려면 또 스마트폰 사용해야 한다고. 거의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하세요."


"(마음이 착잡) 음... 굳이 밴드에 올리지 않더라도, 데일리 리포트는 너 스스로 써보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음... 이제 졸업인데 마지막으로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음... 없어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는 다 하지 말래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는 다 하지 말래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는 다 하지 말래요.


지금까지도 지현이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돈다. 이제 마지막인데 그동안 함께한 선생님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도대체 그동안 난 무얼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쓴 걸까? 지현 아버지의 말대로 쓸데없는 걸 만든 건 아닐까? 졸업 하루를 앞두고 마음이 착잡하다.

 


#졸업식 #우울 #삶의목적상실의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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