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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06. 2021

선생님을 괴롭히는 이유

올해 초부터 체육전담 교사를 맡게 되었다. 지난 교직생활 4년 동안 전담교사가 아닌 담임교사만 했던 터라 나에게는 나름 새로운 도전이었다. 천상 담임 체질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전담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에 열린 마음으로 도전에 임했다.


한 반 약 26명, 3·4·5학년 15개 반, 합쳐서 약 390명. 앞으로 1년 동안 내가 체육시간에 책임질 학생의 수였다. 저학년에 가까운 3학년, 저학년과 고학년의 특징을 지닌 4학년, 고학년인 5학년, 이들 각각 학년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교육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군 복무 시절 조교를 하던 경험을 살려, 아이들을 능숙하게 줄 세우고 안전사고를 예방했다. 각각 학년, 학반의 특성에 맞게 여러 게임들을 변형하여 수업에 적용했으며, 나름 아이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선생님: 얘들아 저번 주말은 잘 보냈니?
아이들: 네~!
승찬: 아니요. 최악이었어요.
선생님: 흠... 그래? 체육수업하면 나아질 거야. 오늘도 즐거운 체육수업 한 번 해보자.
승찬: 체육 하나도 안 즐거운데요? 재미없는데요?


이제 갓 3학년인 승찬(가명)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가 말하는 것마다 사사건건 토를 달았고, 모든 수업 활동에 불만을 표시했다. 수업 시작 때 준비운동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체육활동 도중 혼자서 놀이터에 가거나, 교실로 올라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승찬이의 이런 돌발행동 때문에 그 반의 분위기는 항상 엉망이었다.


아이1: 선생님, 승찬이가 또 게임을 안 해요. 승찬이 때문에 게임 진행이 안 돼요.
아이2: 선생님, 승찬이랑 팀 안 하고 싶어요. 바꾸면 안 돼요?
아이3: 선생님, 승찬이 때문에 체육하기가 싫어졌어요.


매수업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듣는 얘기들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업을 마치고 승찬이를 따로 불러 몇 번 상담을 해보기도 했다.


선생님: 승찬아, 체육수업이 재미가 없니?
승찬: (잠깐 침묵) 네...
선생님: 왜 그럴까?
승찬: 몰라요... 그냥 재미없어요.
선생님: 그래도 아무리 재미가 없더라도, 그래도 수업에는 열심히 참여해야지. 체육수업도 엄연한 수업이야. 네가 참여 안 하면 다른 친구들한테도 피해 주는 거 알고 있지? 앞으로 열심히 참여하자.
승찬: 네...


하지만 그 뒤로도 승찬이의 행동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불량한 태도로 수업에 임했고, 반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군대 조교시절 훈련병한테 하던 것처럼 승찬이에게 샤우팅을 질렀다.


선생님: 정승찬, 지금 뭐 하는 거야!!!!!!(샤우팅)
승찬: (깜짝 놀람) (한참 동안 눈물) (억지로 수업에 참여하는 승찬)


아무리 달래고 화를 내어도 그때뿐이었고, 승찬이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는 체육이 싫다고 대놓고 말하면서 반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나의 스트레스 또한 극에 달하게 되었다.


'도대체 뭐가 문젤까? 정말로 내 수업이 재미가 없는 걸까? 혹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아직 반년도 더 남았는데, 앞으로 체육전담교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



그러던 어느 날, 난 뜻밖의 곳에서 문제해결의 통찰을 얻게 되었다. 당시 난 마보(마음챙김 명상 어플) 유정은 대표님께 그룹 명상 코칭을 받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대표님이 내주셨던 숙제가 바로 자비(慈悲)명상의 일종이었다. 일주일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눈을 바라보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당신이 행복하기를'하고 속으로 되뇌는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숙제였다. 바로 학생들에게 적용해보았다.


학생1: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00아 안녕. (당신이 행복하기를)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뭔가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 내 마음이 홀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하필 그날은 승찬이 반의 수업이었다.


선생님: 자, 오늘은 플라잉디스크를 이용해서 피구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승찬: 아~~~ 시작부터 노잼. 진짜 재미없을 거 같네요.

 

시작부터 선생님을 화나게 하는 우리 승찬이^^ 꾹 참고 승찬이의 눈을 바라보며 '당신이 행복하기를, 당신이 행복하기를' 되뇌면서 겨우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승찬이를 따로 불렀다. 그 순간에도 난 승찬이를 바라보며 '당신이 행복하기를'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승찬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승찬이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번에는 방법을 아예 바꿔보기로 했다. 승찬이의 입장에 서서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선생님: 승찬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도와줄 건 없을까? 무엇이 승찬이를 계속 힘들게 하는 걸까?
승찬: (침묵)
선생님: 선생님은 승찬이를 꼭 도와주고 싶은데, 승찬이가 어떤 점이 힘든지 말을 해줘야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승찬아, 선생님이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해줄 거니깐 말해주면 안 될까?


그 순간에도 승찬이의 티 없이 맑은 눈을 바라보며 '당신이 행복하기를'을 되뇌었다. 정말 진심으로 승찬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과 행동이었다. 순간 승찬이가 눈물을 흘렸다. 그냥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펑펑 울었다.


선생님: (깜짝 놀라) 승찬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울어도 돼. 괜찮아. (토닥토닥)

(잠시 후)

승찬: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사실... 수업 때 하는 게임 규칙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다 아는 거 같은데, 저만 모르는 거 같아서... (훌쩍)

 

순간 머리에 '땅!' 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문제해결의 포인트를 아예 잘못 잡고 있었다. 난 승찬이의 문제행동을 바로 잡으려고만 했지, 왜 그런 문제행동을 보였는지 어떻게 하면 그 원인을 해소할 수 있을 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순간 그동안 내가 너무 어른의 입장에서 승찬이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친구들 앞에서 규칙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는 너무 부끄럽고, 그렇다고 이미 체육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상황에서 규칙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말하면 혼날 거 같기도 하고.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포기해야겠다. 체육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부끄러운 것보다는 이게 낫지. 


승찬이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수업시간에 내 말에 토를 달고, 돌발행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도움요청이었을 것이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이다.


선생님: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승찬이가 게임 규칙을 몰라서 힘들다는 걸 그동안 선생님이 몰랐어. 게임 설명도 선생님이 너무 어렵게 한 거 같아 미안하네... 근데 승찬아, 승찬이도 앞으로 게임이 잘 이해가 안 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선생님한테 와서 알려주면 안 될까? 선생님이 잘 가르쳐줄 수 있는데~ 승찬아,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당당하고 멋진걸? 다음부터는 이해 안 되는 게 있으면 선생님한테 꼭 물어봐. 알겠지? 약속!
승찬: (밝은 표정으로) 네!



승찬이 사건 이후로 제2의 승찬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대대적으로 아이들에게 공표했다.

선생님: 얘들아,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오히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너희들이 모르는 걸 배우지 않고 아는 척하면서 학교를 다닌다면, 몇 년, 몇십 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잘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안 된다고 솔직하게 손들어 줬으면 좋겠어.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고 멋진 사람이야. 그리고 '그것도 모르냐.'라고 친구한테 뭐라고 사람이 있는데, 그럴 시간에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선생님은 서로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체육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상외로 승찬이처럼 수업 시간에 게임 규칙을 이해를 못 해 끙끙 앓고 있던 학생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학생들이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난 좀 더 효과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전보다 즐겁고 원활한 체육시간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승찬이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승찬이의 변화였다. 전과 달리 승찬이는 적극적으로 체육활동에 임했고,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바로 내게 달려와서 도움을 요청했다.

승찬: 선생님, 이 규칙이 잘 이해가 안 돼요.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날 체육수업이 끝나고 승찬이가 엄지척하며 나에게 했던 말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선생님, 정말 완벽한 체육수업 시간이었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체육수업 #학생의변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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