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Mar 21. 2020

운명적 사랑!? 과연 존재할까?

아직도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에게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이었다. 당시 도덕 선생님께서는 40대 초반의 처녀셨고 매 번 색다른 수업으로 나를 충격에 빠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도덕 선생님께서 학습지를 나눠주셨는데 그날도 질문 내용이 신박했다.

당신의 이상형은?

나는 그동안 TV에서 보던 로맨틱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떠올리며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썼고 도덕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읽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처럼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다!'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당시에 난 속으로 '선생님은 사랑에 실패했지만 나의 운명적 사랑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마치 멜로 영화 속 운명의 사랑을 기다리는 주인공처럼...


TV의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예능들은 나의 사랑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천녀유혼', '타이타닉', '엽기적인 그녀', '이프 온리'를 거쳐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당시 고딩), 나의 운명적 사랑관에 대한 믿음은 정점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고 난 그 아이가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제곡을 연습해서 그 아이 앞에서 연주하고 나의 진심을 담은 노래도 여러 번 불러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사귀긴 했으나 그 아이가 금방 다른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바람에 안 좋게 헤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별 이후 내 운명적 사랑관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저번 여자 친구는 나의 운명적 사랑이 아니었던 거야. 어딘가 완벽한 나의 상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나는 중학생 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말 그대로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가슴이 두근거리면 바로 사귀었다. 그리고 사귀다가 가슴 두근거림이 멈추면 '넌 나의 운명의 상대가 아닌 거 같아.'라고 말하고 헤어지곤 했다. 근데 또 이상하게 헤어지고 나면 다시 상대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겼다. 특히 외적으로 예쁘면서 나에게 쌀쌀맞은(헤어지고 나서) 여자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내 연애는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1도 없는... 엉망이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낯이 뜨거워지고 미안해진다.


비슷한 패턴의 연애가 반복이 되자 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사람이 운명적 사랑이다.'라는 전제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1974년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진이 진행한 '흔들 다리 효과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 내용은 이렇다. 한 여성이 흔들리는 다리와 단단한 다리 중간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흔들 다리를 건넌 남성의 50%가 여성에게 설문조사를 핑계로 전화한 반면, 단단한 다리를 건넌 사람은 12.5%만이 전화를 했다. 즉, 남성들은 흔들 다리를 건너며 심박수가 높아진 것(생리적 변화)을 이 여성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 간의 케미(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이성적 끌림)를 만들어내는 것은 흔들 다리 같은 상황 말고도 많다. 템포가 빠른 즐겁고 신나는 음악은 심박수를 빠르게 해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든다. 여성은 배란기 때 상대방에게 더 끌리게 되어있다. 알코올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감정과 느낌, 쾌락에 충실하게 만든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부산물인 안드로스타다이에논 페로몬을 많이 가진 남성에게 여성들은 끌리게 된다.(즉, 운동하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끌릴 확률이 높다.) 또한, 오늘의 기분 상태에 따라서 혹은 어제 무슨 영화를 봤냐에 따라서도 상대방에 대한 끌림 정도가 달라진다.


이렇게나 변수가 많다. 내가 오늘 첫눈에 반해 고백한 대상을 교감신경(투쟁, 도피)이 아닌 부교감신경(안정)을 활성화시키는 환경에서 만났다면 아무런 호감 없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자~ 위의 정보를 통해 우리는 이성을 봤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우연한 여러 상황이 조합되어 생긴 생리적 반응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반응들은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로 지속되기가 힘들다.) 즉,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사람이 운명적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명적 사랑은 과연 존재할까?


일단 우리가 어릴 때부터 대중매체에서 봐왔던 운명적 사랑의 이미지에 대해 상상해보자.

1. 나의 운명의 짝은 하나이고 지구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2. 우린 만나면 첫눈에 서로가 운명적 상대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3. 마치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듯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것이고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관계(사랑)가 유지될 것이다.

4.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어느 순간 백마 탄 왕자님이 나와서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 것이다.

5. 우린 전생에도 계속 연인관계였으며, 현생에서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서로 애타게 찾고 있다. (너무 나갔나? ㅎㅎ, 근데 이런 영화들이 의외로 많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 사실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이런 정보들을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무의식 속에 이러한 사고가 깊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의 경우 31퍼센트, 그리고 여성들의 경우 26퍼센트가 모든 사람에게는 이 우주 안에서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씩밖에 없다고 믿었다.
                                                                                                                          -책 '러브 팩추얼리' 中-

내 주변에도 이러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 특히 모태솔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이런 환상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태솔로인 것에 대해서 갖가지 의미부여를 한다.

'나의 운명의 상대는 어딘가에 있어. 곧 나타날 거야.' 

하지만 막상 기회가 와도 이 친구들은 그 기회를 잡지 않는다.(아니면, 잡지 못하는 것일까?) 소개팅을 주선해줘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번호를 물어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내가 고작 이런 사람 만나려고 여태까지 아무도 안 사귄 줄 아나.'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짝에 대한 이들의 기준치를 높아져가고 현실과의 괴리감은 커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운명적 사랑이 실제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영화,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현실에서 운명적 사랑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10년 간 수 백 명을 인터뷰하고 여러 사랑에 관한 논문들을 정리한 로라 무차의 책 '러브 팩츄얼리'에서도 그런 사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운명적 사랑은 아니어도 행복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물론 책에서도 그 사례가 아주 많다.)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포함, 서로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2.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싸운다. 그리고 갈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반면, 운명론자들은 갈등이 생기면 '나의 운명적 상대가 아니구나.'하고 갈등을 계속 회피하거나 서로를 떠날 확률이 높다.)

3.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라 과정이다.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기술은 배우려 하지 않고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고 한탄이나 한다고 비유했다.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관계는 찾는 게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들이 쌓여서 운명적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중학생 때 도덕 선생님께서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면 내 사랑관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대중매체에서 운명적 사랑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 동반자적 사랑의 사례를 보여주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사랑관을 제시해준다면 아이들의 인생은 얼마나 바뀔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