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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30. 2022

#9 아이의 학습동기를 자극하는 3가지 전략

(이전화)


의찬(가명)이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연락을 했다.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내년 3월 개학을 하기 전까지 수학, 영어 과목 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수준으로 만들어놓기.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1 1학기 정도까지는 진도를 나가야 했다. 두 번째, 공부습관과 생활습관 만들기. 내년이면 의찬이 담임 선생님도 나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다. 그럼 의찬이를 옆에서 집중적으로 케어해 줄 사람이 없다. 우리가 없어도 의찬이가 학습을 꾸준히 이어나가게끔, 올바른 학습·생활 습관을 형성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중 장기적으로 봤을 때, 첫 번째 목표보다 두 번째 목표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의찬이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게 분석해보았다. 그동안의 행동으로 보아, 의찬이의 학습 의지는 현재 초3~4 수준이었다. 일단 의찬이는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해 본 경험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의찬이가 힘들다고 하면, 도움반이니깐 쉽게 포기가 용인되었고, 집에서는 '힘들면 하지 마라.'며 오히려 포기를 권장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의찬이의 과제집착력이나 학습의지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찬이에게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거의 없었다. 우리 인간은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떠한 결핍 요소가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의찬이에게는 결핍 요소가 전혀 없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집안 형편도 어렵고, 또래 친구들보다 공부도 많이 늦었으니, 지금 이 좋은 기회를 잡아서 공부를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찬이의 시각에서 본 자신의 세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의찬이에게는 게임과 친구가 인생의 전부였다. 아무리 게임을 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집안 환경은 의찬이에게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중학교쯤 되면, 주변 친구들이 옷차림이나 가정환경, 공부 등으로 놀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학교 학생들은 너무 착해서 어떠한 놀림도 괴롭힘도 없었다. 의찬이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이미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한데 더 이상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안다. 곧 있으면 의찬이에게 닥칠 고난들을. 당장 고등학교만 올라가더라도 의찬이를 얕보거나 무시하는 심지어는 괴롭히는 친구들이 생겨날 것이고,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학습 성취나 의지로는 성인이 되어서 대학은커녕, 변변찮은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성인이 되면 현재도 몸상태가 좋지 않은 조부모님을 부양을 해야 할 텐데, 그 책임을 온전히 지기에는 지금 이대로의 나약한 의찬이로서는 힘들다는 것을.


사실 이 부분들이 유독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의찬이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다. 다른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도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지만, 의찬이에게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평생 게임만 해오던 아이가 아무런 보호 울타리 없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의찬이에게 이러한 나의 우려들과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몇 번이나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전혀 와닿지 않는 듯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집어치우고 마냥 친구들이랑 게임하고 노는 게 즐거운 의찬이었다.


'그래... 이제 중1짜리가 뭘 알겠어? 나중에 몸소 겪으면 그때 변화의 필요성을 피부로 체감하겠지...'


하지만 의찬이가 직접 겪고 깨달았을 때는 시기가 너무 늦다. 지금도 늦다. 한시가 급했다. 의찬이의 학습동기를 자극할 수 있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의논 끝에 우리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이렇게 3가지 전략을 마련했다.

 

라이언과 데시(인간행동 연구학자)는 인체가 바르게 기능하려면 3대 다량 영양소(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가 필요하듯이 정신이 건강하려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세 가지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육체가 굶주리면 공복통이 생기고 정신의 영양이 부족하면 불안감, 초조감 등 뭔가가 빠진 듯한 기분이 생긴다. 자기결정 이론은 아이에게 심리적 필수영양소가 부족할 때 스크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불건전한 행동이 과도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라이언은 그 원인을 무조건 디지털 기기에서 찾을 게 아니라 왜 어떤 아이들은 애초에 딴짓에 더 잘 넘어가는지 알아야 한다고 본다. <초집중> p.232


요약하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충분치 않을 때, 아이는 딴짓에서 심리적 영양소를 찾는다. 의찬이가 계속 게임만 하는 것도 심리적 필수영양소가 부족해서는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이 세 영양소 보충을 통해 의찬이의 학습에 대한 내적동기를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첫 번째, 자율성. 의찬이에게 '오늘은 무얼 해라. 몇 쪽까지 풀어라.'가 아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고 본인이 선택하게끔 하기로 했다. '수학 문제집 20p 풀어라.'와 '수학 문제집 10p 풀래? 20p 풀래? 30p 풀래?' 해서 20p를 선택한 것은 다르다. 같은 결과라도 후자는 본인이 직접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숙제를 더 열심히 할 확률이 높다.


자율성의 꽃인 계획 세우기에 대해서도 알려주기로 했다. 의찬이는 여태 계획 없이, 본인의 무의식, 습관대로 막 살아왔다. 남이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의도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성취의 경험을 맛보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처음 플래너를 이용하는 의찬이의 수준을 감안해서 딱 하루에 3개 할 일, big3만 계획하고 실천하도록 했다.


두 번째, 유능성. 아이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전, 성취, 성장을 열망한다. 의찬이가 게임에 빠져 있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바로 보상이 나오고 레벨업을 하는 게임과는 달리, 현실을 그렇게 녹록지 않다. 현실의 성장은 노력한 대로 경험치를 주는 선형적인 게임과는 달리 비선형적이다. 실질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복기도 길다. 의찬이가 그동안 공부를 포기한 이유 중에 하나기도 하다. 노력을 해도 결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도 않고, 자신의 실력이 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러한 의찬이의 유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찬이가 계획한 일들을 실천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기로 했다. 다만 무조건적인 칭찬은 지양했다. 그리고 의찬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과제를 잘게 배분해주었다. 예를 들면 30p를 풀어야 한다고 하면, 6p씩 끊어서 풀리고 사이사이 피드백과 칭찬을 주었다.


사람은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육상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찬이가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스톱워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스스로 시간을 설정하고, 문제를 풀게끔 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시간설정 및 과제마감시간을 통해, 자신의 능력치를 아는 메타인지력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세 번째, 관계성. 아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느낌을 원한다. 의찬이는 나에게 소중한 제자고, 나는 의찬이에게 소중한 선생님이다. 의찬이가 현재 딱히 변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음에도 공부를 하러 오는 이유도 선생님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친구를 통해, 관계성을 좀 더 확장시켜 보기로 했다. 1대 1로 수업을 하는 수학과는 달리, 영어는 의찬이 반 친구들이랑 담임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를 한다. 의찬이 담임 선생님께서는 같이 영어를 공부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공부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학교 마치고 도서관에도 가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의찬이에게 많은 힘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의찬이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영어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다들 의찬이와 비슷한 학습 수준이었기에, 보고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자칫하면 의찬이 포함, 친구들 전체가 하향 평준화 될 위험도 있었다. 따라서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친구도 잘 도우고, 의찬이와 관계도 괜찮은 그런 의찬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있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의찬이와는 초4, 초5 때 같은 반을 했고, 지금 현재도 같은 중학교인 듬직한 재한(가명)이가 떠올랐다. 의찬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선생님도 적임자라는데 동의하셨고 재한이와 따로 얘기해본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다음화에 계속.





참고도서: <초집중> - 니르 이얄, 줄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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