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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Feb 27. 2022

#1 일진이 되어 찾아온 제자

선생님, 학교에 찾아가도 돼요?


작년 5월, 졸업한 제자 민수(가명)에게 연락이 왔다. 안부인사 겸 스승의 날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겠지? 친구들이랑 사이는 좋겠지?'  


졸업 후 4개월 동안, 제자가 어떻게 변했을지 잔뜩 기대하며 제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민수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와... 민수야, 너 키 엄청 많이 컸다. 살도 많이 빠지고, 얼굴도 더 잘생겨졌는데? 멋지다!"


"아, 제가 좀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먹는 것도 적게 먹고, 운동도 엄청 열심히 했습니다."


불과 4개월 만에 민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키가 7~8cm 이상 컸고, 살은 15kg 이상 뺐다고 한다. 매번 볼살을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통통하고 귀여웠던 초등학생 민수는 마른 근육형 체형의 훈훈한 외모를 가진 중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무협소설의 환골탈태를 보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배에 왕자 복근도 만들었다고 한다.


"근데 너 말투가 왜 이래? 좀 이상한데?"


"어, 왜 이러지……. 너무 오랜만에 찾아봬서 그런가요. 제가 형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 좀 편하게 해도 되겠습니까?"


"뭐래. 언제 선생님이 너한테 불편하게 하라고 했냐? (웃음) 예전처럼 편하게 얘기해."


"아……. 그래도 돼요? 영 어색하네요. 말 편하게 하겠습니다."


사실 처음에 인사할 때부터 민수가 좀 이상해 보이긴 했다. 마치 조폭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과도한 인사 동작, 껄렁한 몸동작, 과한 경어 사용. 거기다 머리까지 빡빡 깎으니, 마치 영화 <친구>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출처: 다음 영화(포토)


"학교 생활은 어때? 공부는 잘하고 있어? 친구들이랑 관계는?"


"(잠깐 침묵) 공부는……. 음……. 거의 수업 안 들어요. 재미가 없어서. 선생님, 저 이제 일진이에요. 요새 학교에서 잘 나가요."


"(……)"


"복싱 학원에 다니면서 살도 빼고, 싸우는 법도 배워서 이제 웬만한 애들은 다 이겨요. 제가 지금 이 학교에서 싸움 1등이에요. 이제 아무도 저 못 건드려요."


"(……)"


황당했다. 일진이라니! 가끔씩 건방지긴 했어도, 초등학교 때 한 번도 친구들과 싸운 적이 없는 아이였다. 워낙 재치 있고 적극적이어서 수업시간에 활력을 주는 비타민 같은 학생이었다. 수업시간 발표의 절반은 민수의 몫일 정도로. 그랬던 아이가 수업을 안 듣는다니…….


"복싱 학원에 다니면 원래 다니던 공부방은?"


"아~ 그건 끊었어요. 공부랑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서."


"아니, 너 공부 잘하잖아. 작년 1학기 때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 쳐도, 2학기 때는 반에서 최소 평균 이상 성적이었잖아.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 왜 쉽게 포기해버리는 거야? 그리고 학원을 안 다니면 그 시간만큼 수업에 더 집중해야지. 지금 네가 보내는 학창 시절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10년 뒤에 너를 만드는 거야."


"제가 하고 싶은 거랑 공부랑 별로 상관이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하고 싶은데?"


"건달이요. 건달이 제 꿈이에요."


"건달이요. 건달이 제 꿈이에요."


"(충격) (……) (싸늘하게) 그게 선생님 앞에서 할 소리야? 어!?"


"아,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아, 근데 건달이나 조폭도 괜찮은 거 같은데……."


"지금 이놈이 장난쳐? 너 작년에 선생님이랑 같이 햄버거 먹으면서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새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거 기억나, 안나?


"아, 기억나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


"(중간에 말을 끊으며) 작년 한 해 선생님이 너한테 얼마나 신경 많이 썼는지 너도 알잖아. 근데 그걸 이런 식으로 갚아? 지금 네 모습이 선생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생각해? 진정 네 스스로한테 지금 네 모습이 떳떳해? 일진이라고 자랑하고, 건달이 꿈이라고 하는 게?"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너무 함부로 했어요."


"하……."


허무했다. 민수는 재작년 1년 동안 27명 학생 중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학생이었다. 집에서 생활·학습 습관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원격수업 때 따로 불러 교실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틈틈이 전화를 해서 민수가 하루 생활을 잘 보내고 있는지 체크했다. 학습동기 형성을 위해, 반 친구들 몰래 따로 밥을 사주면서 심층상담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과의 소통도 잊지 않았다. 민수가 현재 부족한 점과 개선되어야 할 점들에 대해 수시로 말씀드렸다. 민수가 바르게 자라기 위해서,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의 말씀도 드렸다.


하지만 오늘의 민수를 보고 이 모든 노력들이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결과가 이렇게 돼버릴 거면 그동안 내가 했던 교육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무감이 밀려왔다. 교사로서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제자를 지키지 못한 못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때문일까? 허무함의 감정은 금세 화남으로 바뀌었다.


'왜 민수 부모님은 공부방을 끊고 복싱 학원을 보내신 거지? 민수가 평소에 일진을 동경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 복싱에서 배운 것들을 학교에서 싸움으로 써먹을 거라는 것을 진짜 모르셨을까? 근데 굳이 복싱 학원에 보낸다고?'

'분명 작년에 SNS에서의 민수 행동이 좀 과격하다고, SNS 사용 매너와 사용 시간에 대해서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1학기 때부터 나쁜 친구들이나 일진 형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외출 관리를 좀 해야겠다고, 아이와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계속 말씀드렸는데, 그냥 방치하셨지.'


1년 동안 끊임없이 민수 어머님과 소통을 했다. 아니, 소통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방향적인 소통이었다. 민수 어머니는 항상 '선생님,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했지만 말뿐이었다.


민수 부모님에 대한 화남은 어느새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자책감으로 바뀌어있었다.


'왜 그때 좀 더 강력하게 민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을까?'

'일진 형들과 어울려 다닐 때, 민수한테 주의만 줄 게 아니었는데……. 그때 일진 애가 직접 교문에 찾아왔을 때, 내가 직접 애와 얘기해봤어야 하는 건데…….'

'민수한테 선택권을 줄 게 아니라, 아예 일진 친구들도 못 만나게 하고 SNS도 못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아이가 이 정도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하……. 결국 내가 문제네.'


당시 민수와 수차례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 공부를 안 하면, 일진 형들과 계속 어울리면, 지금처럼 생활습관이 엉망이면 앞으로 향후 몇 년간 벌어질 일들을 차근차근 민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은 그냥 호기심에 나쁜 것들을 한 번 해보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던 기억도 났다. 당연히 민수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바뀌겠다고 몇 번이나 내 앞에서 다짐했다. 실제로도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됐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선생님? 선생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떻게 하면 네가 다시 상태가 좋아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인마."


"저 정말 괜찮아요. 학교에서는 이제 아무도 저를 건드릴 수 없고, 친구들도 많아요. 다른 학교에 애들도 저를 인정해주고. 엄청 재미있어요."


그게 문제라고, 인마……. 지금 민수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 상황을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게 문제였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생님께 대들고, 친구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한참 동안 민수에게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주었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는 듯했다. 그저 지금의 일진 생활이 마냥 즐거운 듯했다.


'당장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지금은 호기심과 즐거움에 일진놀이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민수를 믿어주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민수는 천성이 착하기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민수야, 네가 지금은 일진을 하는 게 마냥 즐겁고 좋을지 모르지만 분명 나중에는 생각이 달라질 거야. 그때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찾아와. 알겠지?"


"네!"


민수가 다녀가고 한동안 자책감과 교육에 대한 허무감에 시달렸다. 민수 부모님께 연락을 한 번 드려볼까 수차례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려웠다.


그러던 와중,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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