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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Feb 05. 2022

졸업한 제자의 고마운 선물

약 3년 전, 청소년 과학 탐구대회 학생지도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교실남 선생님, 잠시 나랑 얘기 좀 할까?"


전교직원회의가 끝나고 갑자기 A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이시지? 과학 탐구대회 지도 학생이 A선생님 반 학생이어서 그런 건가?


"혹시 무슨 일로...?"

"진경(가명)이한테 들었는데, 밤 9시까지 애들 지도한다며? 심지어 주말에도 모이고. 그걸 굳이 그 시간까지 지도할 이유가 있어?"


다짜고짜 따지듯이 묻는 A선생님.


"음... 사실 저도 융합과학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아이들이 딱히 의지가 없으면 대회 출전에만 의의를 두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원하더라고요. 잘하고 싶다고. 좋은 성적 거두고 싶다고. 아이들이 이렇게 의지가 불타오르는데, 선생님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더라고요."


난 항상 대회를 나가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선택권을 제시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타의에 의해 억지로 하는 건지 혹은 별 마음이 없는 건지. 만약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고 말한다. 반면 열심히 할 마음이 없다면, 일찍 포기를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거나 대회 출전에만 의의를 두자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자를 택한다. 이번 융합과학 지도 학생 2명도 마찬가지였다.


A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평일에는 매일 밤 9시까지 심지어는 매주 주말에 모여서 대회 준비를 했다.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도교사로서 내 역량이 부족한 탓도 있었다. 기존이 지식이 전무했기에, 모든 정보와 지식들을 처음부터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융합과학은 발명품을 만드는 것이 주였기에 기출문제 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도 4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대회 준비를 하는데도 그 누구도 불평불만 없이 즐겁게 공부를 해나갔다. 다들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다.


A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

"아... 내가 보기엔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교장, 교감 선생님한테는 허락은 받았어?"

"네. 허락받았어요. 열심히 한다고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부모님한테는 허락받았어? 내가 부모라면 엄청 싫을 거 같은데. 학원도 못 가고."

"아이 둘 다 부모님께 허락받았고,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혹시 부족한 공부가 있으면 제가 따로 공부도 가르쳐준다고 말씀드렸어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선배교사가 후배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못해줄망정,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양 일일이 따지는 것이 짜증이 났다.


A선생님이 마치 나를 위하는 척 말을 이어갔다.

"과학 쪽은 원래 지도하시던 선생님이 많아서, 어차피 상 타기 힘들어. 시에서 1등 해야 이동점수 주는 거 알고 있지? 점수 어차피 얻기 힘들다니깐. 점수 때문에 애들 밤늦게까지 잡아놓는 거는 좀 아닌 거 같아."

"아니, 승진점수나 이동점수를 얻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애들이 진짜 원해서 지도하는 거예요. 점수는 관심도 없고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선생님이 왜 이러시는지 저는 모르겠네요."

"아니, 그냥 좀 걱정이 되어서. (궁시렁대면서) 어휴... 내가 부모였으면 진짜 싫었겠다."


너무 화가 났다.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는 모습이 경멸스러웠다. 뭐, 이런 거 가지고 화를 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각자가 원하는 최고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에 정체성과 인생의 의미를 두고 있는 나에게 A선생님의 언행은 모욕적이었다. 정말 나는 순수한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결과는 크게 상관없었다. 상을 못 받더라도, 선생님과 한 달 넘게 열심히 대회를 준비한 경험들이 앞으로 이 아이들의 인생에 값진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한 달 동안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만의 유대관계와 추억도 생겼고 말이다.


이참에 대회까지 1등을 해서 A선생님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2등이었다. 만들기가 문제였다. 대회 준비 기간 동안 작품설계도, 작품설명서, 발표는 만능 스크립트를 만들어 완벽하게 준비를 해갔지만, 만들기는 예외였다. 지도교사인 내가 미술, 만들기에는 잼병이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지도교사의 역량 문제였다.


당시에 대회 결과를 듣고 아쉬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실력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진경(가명)이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아니에요.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서 잘 가르쳐주셨어요. 우리가 못 한 거죠. 너무 아쉬워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제가 열심히 과학 공부해서 중학교 때는 1등 한 번 해볼게요. 기대하세요!"





그 뒤로 2년이 지났다. 진경이와는 그때 과학 대회 지도가 인연이 되어, 중학생이 된 이후에도 계속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번씩 학교에 찾아와서, 나에게 공부·교우관계·생활습관 등에 관해서 고민 상담을 요청을 하곤 했다. 과학 탐구 대회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9월 진경이에게서 카톡 하나가 왔다.


이번에 청소년 과학 탐구 대회 융합과학 부문에 출전해서 도 대표로 뽑혔다는 소식이었다.


시 대표도 아니고 무려 도 대표라니!


2년 전에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다시 진경이가 학교에 찾아왔다. 뭔가 수상쩍은 종이가방을 들고서.

"선생님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선생님한테는 항상 감사해서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 계속 고민이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더라고요. 아, 그리고 편지는 썼는데, 집에 깜빡하고 놔두고 왔어요. ㅠㅠ"



종이가방 안에는 진경이가 직접 주문 제작한 도시락 케이크와 스노우볼이 들어있었다.


"와... 고마워. 케이크도 진짜 귀엽네. 크리스마스에 제자한테 케이크도 받아보고... 진짜 고맙다, 진경아!"


오랜만에 만난 제자와 함께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진경이가 갑자기 떠오른 듯 말했다.


"아, 맞다! 선생님,
저 이번에 융합과학 전국대회 금상 탔어요!"


"아, 맞다! 선생님, 저 이번에 융합과학 전국대회 금상 탔어요!"

"금상이라고? 와... 미쳤다... 진짜 멋지네. 전국대회 금상이라니... 대단하다, 대단해."


순간 진경이를 전국대회 금상까지 수상할 수 있게 지도한 지도교사분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다.


"고생 많았어. 지도하신 선생님도 고생 많이 하셨겠네. 과학 쪽에 실력이 있으신 분이신가 봐."

"엥? 선생님, 저 혼자 준비했어요."

"엥? 지도교사 없이?"

"네. 선생님 없이 혼자서 준비했어요."

"와... 정말 혼자서 대회를 준비했다고?

"죽어라 준비했죠. 뭐. (웃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진경이는 애초에 전국대회급의 실력과 잠재력이 있었지만, 당시 지도교사인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실력 발휘가 제대로 안 된 건 아닐까 하는.


"진경이 네가 이렇게 잘하는데... 2년 전에 선생님이 역량이 부족해서 미안하다. 선생님이 실력만 좀 있었어도, 그때도 좋은 결과를 얻는 건데, 이렇게 잘하는 애를 데리고..."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 상을 탄 거예요. 그때의 경험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지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그때 가르쳐주신 글쓰기나 발표하는 방법도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요. 다이아그리드(건축 공법의 일종:ㅅ자 자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구조) 기억나시죠? 그때 대회 준비할 때, 만능 키워드로 만든 거. 이번 대회에서 그것도 써먹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순간 울컥했다.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준 제자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선생님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했다.


제자가 성장한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 선생님에게 이보다 값지고 고마운 선물이 있을까 싶다.



+추가) 글을 읽은 제자가 문자를 보내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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