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만에, 일본어 공부를 하려니 작년에 일본어 공부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닥을 찍었던 시기였다. 일본어 급수 시험공부라도 하자. 그거라도 하자. 이것조차 못하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 하필 일본어였냐면 수년간 일본어 공부를 했다가, 안 했다가를 반복하면서 급수라던가, 점수라던가, 아무튼 일본어에 관련된 뚜렷한 성과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 일본어 실력은, 지금도 물론 비슷하겠지만, 아마도 3급과 4급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의지는 좋았다. 하지만 일본어 2급 시험은 절대 만만한 시험이 아니었다. 일본어 급수 시험은 일본 외무성 주관 시험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마인드가 그대로 담겨 있다. 대충 암기해서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게 만든 시험이다. 나는 몰랐다. 어느 정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
학원을 등록하고 첫 수업에 갔다. 검은 재킷에 검은색 스키니 바지를 입은, 강한 눈매를 가진 여선생님이 서 있었다. 한 번에 포스를 느낄 수가 있었다. 첫 시간부터 문장 읽기를 시켰다. 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더듬거리면 즉시 지적받았다. 더듬는 순간 일본 애들은 절대 기회를 안 줍니다. 문법을 배우면 그날 배웠던 문법을 다음 시간 혹은 다음번에 문제를 풀다가 그 문법이 나올 때 줄줄줄 브리핑할 수 있어야 했다. 첫날부터 말 그대로 숨이 막혔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온몸에 긴장이 풀려서 피곤해질 지경이었다.
다음 시간에 가니 나와 같이 새로 들어왔던 수강생 중 2명은 반을 바꿨는지, 환불을 했는지 아무튼 보이지 않았다. 나도 고민했다. 스타일이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반을 바꾸셔도 괜찮습니다. 여전사 같은 선생님이 말했다. 사실 나도 반을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어차피 시간대가 맞는 반도 없었다. 못 먹어도 고다.
역시나 학원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가 되어도 수업시간은 늘 숨이 막혔다. 수업을 마치면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숙제하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참 뒤처진, 그러니까 3급 수준의, 문법이나 어휘도 따로 공부해야 했다. 복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다음 시간에 왕창 깨지니까.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두 달 만에 시험을 준비한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그래도 짱돌 굴려서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일본어 선생님은 특이했다. 일본에서 취업하거나 일본 기업에 들어가려면 마인드까지 일본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의 도도부현(우리나라의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도 같은)도 외우게 했고, 일본의 문학 상인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의 차이점도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제대로 찾아왔는지 확인도 했다. 수업에 지각하면 듣기가 끝날 때까지, 약 10분 정도, 문 밖에 있다가 들어가야 했다(나는 다행히 지각한 적은 없었다). 초겨울이었는데, 수업 시간에는 기침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기침 소리 신경 쓰이네요. 감기에 걸린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또 한소리 들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한테 감기 옮기면 어떻게 책임질래요? 책에도 파트별로 표시를 해두어야 했다.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를 내면 책 넘기는 소리 신경쓰이네요, 라고 말하며 인상을 썼다. 단어나 문장을 외울 때 연습장에서 쓰면서 외우는 것은 옛날 방식의 미련한 공부법이라고 했다. 단어나 문장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두고, 수시로 보면서 외우세요. 따로 시간 내지 말고, 지하철이나 버스나 화장실에서 틈틈이 외우세요. 두 달 동안 나는 일본어를 진하게 배웠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두 번인가 쳤는데 두 번 다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을 넘었다. 일본어로 기리기리, 라고 한다. 아마 조금만 난이도가 더 어려웠다면 결과는 바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이 상(이 씨)은 이 점수면 반반입니다. 본인이 잘 아시죠? 선생님이 말했다. 물론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솔직히 반이라는 확률도 많이 쳐준 셈이다.
12월 시험일이 되었다. 청해가 어려웠다. 아는 단어가 거의 몇 개밖에 들리지 않았을 만큼. 나머지는 무난했다. 아는 문제, 모르는 문제를 명확히 나눌 수 있을 만큼. 대충 사이즈가 나왔다. 시험을 치고 나오는 데 합격점 언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해에서 과락만 안 나오면, 합격도 가능하겠는데?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하는데 청해 1번 문제에서 8번 문제까지, 지금은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리 8문제를 틀렸다. 결국 채점 결과 청해에서 1문제인가 2문제 차이로 과락 점수가 나왔다.
갑자기 화가 났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2문제 차이라니 괜히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차라리 점수가 한참 모자랐다면 괜찮았을 텐데. 내가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머리를 말 그대로 쥐어 짜냈다. 이게 최선이었다. 허탈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쏟아 냈다. 당분간은 일본어를 거들떠보기도 싫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많이 흘러간 것은 아니고. 물론 일본어 공부는 하지 않았고, 나는 전보다 조금 더 바닥으로 내려간, 아마도 일본어 시험에 불합격한 만큼 더 내려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일본어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작년에 3급을 땄고, 올해는 2급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불합격 사례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물론 얼마나 빡센 일본어 선생님에게 배웠는지도. 그러고 보니 벌써 몇 주 전에 시험 결과가 떴네. 나는 결과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이거 봐, 청해에서 두 문제만 맞았어도 합격인데. 하필 과락이라니. 친구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내가 말했다.
‘결과 -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