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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Jan 12. 2020

저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요

더이상 버틸수가 없는 A양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A양의 어머니는 딸이 유학을 가서 잘 적응하며 사는줄 알았는데 학기 중에 갑자기 들어와서는, 별것도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혼자서 예민해져서 관계를 손절하고 우울해하는 딸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처음 A양을 만났을 때 그녀는 경계를 하는 듯했고, 눈치를 보며 날 지나치게 공손하게 대했다. 처음에 A양은 몇 번을 질문하기 전까지는 뻔한 대답만을 했고, 여러 번 물어보아야만 진짜 자기의 마음을 겨우 꺼내놓았다. 첫날에도 상담이 다 끝날 때가 되어가서야 "엄마 때문에 왔어요. 전 한국 와서 쉬고 싶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상담실로 가라그래서.."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상담에서 다루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묻자, "엄마하고 힘들어요"라고만 답했다. 금세 출국할게 아니면 쉬었다가 상담은 천천히 시작해도 된다고 했지만, 다음 주에 오겠다며 다음 상담 날짜를 잡고서야 나갔다. 그리고 다음 예약된 상담 날짜에 전화가 왔다. 10일만 쉬었다가 상담을 해도 괜찮겠냐고.



잘 해내는 모습을 보이려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만난 A양은 첫 회기보다 누그러진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A양은 예민하고, 소심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았기에 A양은 주변에서 칭찬을 너무 많이 받으며 자랐다. 부모님의 높은 기대를 항상 충족시켜주며 자랐던 A양은 고3 때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입시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더더욱 유학을 가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그녀의 대학생활은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유학 생활을 거치며 A양의 마음속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사람들은 다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의 작은 태도에도 숨겨진 의도를 찾고, 맥락을 연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고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을 곳을 찾지 못했고, 경계의 눈빛만 짙어지게 된 것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예민하고 민감한 감각을 줄이기 위해서, 자아를 강화해야 했다. A양은 '누구라도  상황이었다면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라는 말에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함께 발견했고, A양과는 철저히 그녀의 관점에서 마음을 알아주는 작업을 해나갔다. “나는 어떤 이유로 그랬을까? 그 상황에서 난 어떤 마음이었나?”라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훈련을 했다.



나를 채워가기 


그렇게 수차례의 상담을 거치면서 A양이 사람들을 의심했던 이유에 자기마음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사람에 대한 의심과 날카로운 태도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성취를 위해 내 목소리를 포기하고 살며 버텼지만 결국 번 아웃된 것이었다.


종종 이런 형태의 번아웃은 앞으로의 내삶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몸과 마음의 신호로 볼 수 있다. 이제는 삶의 중심이 외부에 있는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놓고나서 살아가야하는것이다. 목표를 성취하는것도 나를 포기하면서 선택하는것이 아니어야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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