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소장 Oct 23. 2019

아직도 이별이 익숙해지지 않아요  

'열심히'에 가려져 나다움을 잃은  C양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이별이 너무 힘들어요  


C양(30세)은 세월호 사건 이후 갑자기 불안이 크게 올라와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C양은 그 시기 즈음에 소개팅을 통해 남자 친구를 만났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갔다. 그런데 두 달 전 남자 친구에게 카톡으로 갑작스럽게 이별통보를 받았고, 남자 친구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너에게 잘해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말만을 보낸 채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녀는 아무리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는 남자 친구에 대한 분노와 시간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밤마다 눈물이 계속 나고, 대학원생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 앞에 닥친 논문에는 손을 댈 수도 없었다고 한다.   


C양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자란 예쁘고 잘난 딸이었다. C양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자신의 욕구를 어린 나이의 C양에게 투사하며 대리만족을 했고, 어린 나이에 그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강한 애착을 느꼈던 C양은 부모님과 떨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으나 부모님의 설득으로 유학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유학 시절, C양은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와서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개학하면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매번 원치 않는 이별을 반복해서 경험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공항에서의 이별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힘겨운 것이었다고 한다. 마치 낯선 곳에 버려지는 듯한 기분을 10년의 유학 시절 동안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C양은 중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유학 생활을 혼자서 잘 해왔다. 부모님의 기대만큼 잘 버티며 생활했으나 대학을 마칠 즈음엔 마치 온몸이 고갈된 것처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서 1년 이상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었다고 한다. 이러한 청소년기 경험뿐이 아니라  C양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큰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C양에게 이별 이슈뿐 아니라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열심히' 뒤에 숨은 나다움


C양은 상담을 하면서  ‘착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남에게 욕먹지 말아야 하고. 헛되게 살면 안 된다’ 등과 같은 '~해야 한다'의 마음가짐이 자신에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 마음가짐은 그녀를 버티게 한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그것은 그녀를 지치게 한 부분이기도 했다.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다움은 작아져갔고, 점점 더 빛을 잃어갔으며 내가 점점 작아져서 삶을 살아내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상담에서 C양과 나는 일상의 사건들에 들어있는 마음의 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표면에서 '내야 하는' 목소리와 내면의 진짜로 '내고 싶은' 목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표현해나가는 연습을 했다.  상담 시간 동안 우리는 주로 "진짜 속마음은 ~하고 싶었다"와 같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말들은 부실하고 나의 허점이 드러나는 말들이어도 괜찮고, 욕이어도 괜찮고, 외로움 마음이어도 괜찮았다. 


 ~해야지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소리 내어 말해보며 표면의 것과 내면의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더욱 확연히 알게 되었고 C양은 그것이 진짜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했다. 어린아이가 홀로 외국에서 경험했던 아픔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상담이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 C양의 옷차림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정장에서 캐주얼한 옷으로 바뀌었고, 반듯했던 모습은 소파에 기대거나 편한 자세로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C양은 세월호 사건과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계기로 자신 안에 묻혀있었던 이별에 대한 아픔을 다루게 된 것이었다. C양은 때론 어린아이 같아 창피하게 느꼈던 자신의 모습도 과거의 결핍에 따른 것임을 이해하면서 점차 자연스럽게 제 나이에 맞는 태도로 변하게 되었다. 짧은 회기 동안 진행된 상담이었지만 C양은 자신이 많이 성숙해진 시간이 되었다며, 이제는 논문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상담을 종결하게 되었다.  

이전 04화 "제가 우울한지도 몰랐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