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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Feb 14. 2020

항상 남의 반응을 신경 쓰는 게 지쳐요

어린 시절의 상처로 대인관계가 어려운 G양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대인 관계의 어려움


어린 시절의 G양은 겁도 많았지만 호기심도 많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아이였다고 한다. 부모님은 오빠에게는 엄격했지만, 몸이 약했던 그녀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우셨다. 떼를 쓰면 언제나 받아줬고,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교육 방식의 맹점은 세상에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타났다. G양은 집에서 하던 대로 행동했고, 유치원의 친구들은 그녀와 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떼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이런 상황은 초등학교에 가서 더욱 악화되었다. G양은 친구들과 멀어질 때마다 상처를 받았지만, 원인이 자신에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속상한 마음에 매일 울면서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G양은 따돌림을 당했고, 그녀는 중학교에서는 꼭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조건 친구에게 맞추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타인 위주의 삶을 살기 시작한 G양은 늘 친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맞추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웠다.


계속된 타인의 욕구 알아맞히기 게임은 성공적이지 않았고,  그녀는 계속 고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타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게 되었고, 종종 엉뚱한 말을 하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G 양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친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교문을 나서면 연락이 없고, 방학이 되면 다시 혼자가 되고, 학년이 바뀌면 인사만 하는 사이로 남기 일쑤였다.



조금 늦어도 괜찮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기  


G양이 상대방에게 신경 쓸수록 숨은 의도를 찾고 맥락을 연결하느라 남에 대한 의심은 커졌고, 그녀는 더욱 예민해졌다. 스스로 내가 비정상일까? 이렇게 말해도 될까?를 검열하느라 사람들과 있으면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상담 과정에서는 G양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녀가 오랜 세월 지속해온 '타인의 욕구 알아맞추기 게임'의 정체를 이해하고, 지금까지의 행동을 타당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상담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느낌을 언어화하는 과정이었고, 그녀는 '그때의 상황이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랬을 법하다'는 타당화를 통한 공감이 많이 필요했다.


수차례 상담을 거치며 G양은 자신의 생각도 타당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받아들일수록 타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 것이다.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고, 다음 단계로 우리는 믿을 만한 대상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같이 진행하였다. 원래 성장을 위해서는 또래 친구를 통해 자기 타당화를 거쳤어야 했지만, 그녀는 중요한 사춘기 시기에 이 과업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보통 '그때 마음이 어땠나요?'라고 물었을 때 항상 대답은 하나 이상이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양가적이고, 복합적이며, 아주 많은 층위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을 때가 많다. 특히 청소년기 여성의 심리는 더 복잡해질 수 있고, 자아 발달을 위해서는 이런 복잡한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릴 때는 부모의 공감이, 청소년기에는 친구의 공감이 우리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G양은 남들보다 조금 늦었더라도 타인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조금 더 성숙해진 자아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한 만큼, 타인의 욕구를 알아맞히는 게임에서 벗어나 이제 현재에 집중하며 관계 속에서 솔직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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