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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Jul 18. 2020

누구에게나 방어기제가 필요하다

'방어기제'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종종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과거의 상처때문에 불쑥 튀어나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숙한 방어기제는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자존감을 보호하고, 안정적 심리상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죠. 방어기제는 왜 생기고, 어떻게 성숙하게 발현될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A씨(30세)은 아직도 대학생이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친구도 없고, 학점도 나쁘고, 온라인에서만 활동을 하고, 화가 나면 분노조절이 안된다며 상담에 데리고 왔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머니와 달리 A씨는 첫 만남부터 방어적이고 담담한 톤이었다. 자신은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도 있는데 엄마가 과하게 걱정하는 것이라며 다만 어릴 때 힘들었던 경험들을 털어버리고 싶다고 하였다. 
 

A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주된 기억은 바쁜 7~8살 때부터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녁이면 동생을 데려오고, 밥을 챙겨 먹이고 늦은 밤까지 부모님을 기다리던 기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순한 동생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놀다가도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동생을 찾으러 가야하는 것이 귀찮고 짜증스러웠다고 한다. 그럴 때면 어린 A씨는 집에 와서 동생을 괴롭혔다고 한다. A씨가 기억하는 집은 항상 문이 잠겨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 꺼진 차가운 곳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힘들고 짜증났던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기를 말할 때는 A씨의 태도가 변했다. 마치 어딘가 다칠까 봐 온 몸에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에피소드를 물어보면 괴롭힘과 외로움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렇죠 뭐, 그땐 다들 어렸으니까 그런 거죠’라는 말을 자주하고 대충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몸의 근육을 키우고 운동을 열심히 했던 고3때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땐 친구들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운동을 잘하니 시합을 하면 인기가 있었으며 스스로도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A씨를 보면서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의 시기에 왜 몸의 크기를 키우는데 중심을 두어야 했는지 의아스러웠다. 혹시 좋은 대학을 가는 것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 더 절실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도 A씨는 인간관계를 잘하려고 돈도 많이 쓰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는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겐 전화할 사람조차 없다고 하였다. 모임을 해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 받을 것이 사라지면 관계도 끝나는 것 같았고, 가까이 지내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관계가 끝났을 때의 허무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하는 생각에 분노가 차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저로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A씨는 상담에 규칙적으로 오지 않았다. 상담시간에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다루거나 힘든 감정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다음 상담시간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에 경험했던 아픔을 이야기 하는게 아직은 너무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말하고, 마치 남의 일인 듯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과거 아픔과 관련된 이야기는 깊게 들어가긴 어려웠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개인적 불편감들은 표현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이 되니 처음의 경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찡찡거리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신체는 청년이나 마음은 어린 시절로 퇴행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직된 표정은 자연스런 표정으로 바뀌고, 강하고 거칠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작고 사소하게 느꼈던 개인적 감정들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상담회기를 통해 A씨의 일상성은 많이 회복되었다. 예전처럼 일방적이고 희생적인 관계가 아닌 자기중심적인 관계들도 생기게 되었다. A씨에게 상담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한참을 주저하더니 마음속 깊은 곳에 어둡고 진한 덩어리 같은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마그마처럼 아주 검고 진한, 끈적거리는, 사이즈가 너무 커서 크기를 말할 수 없는, 용암처럼 분출될 수도 있고 밖으로 나와서 굳으면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고 그동안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공격적으로 보일지라도 나에게 중요한 것이다.”라고했다. 나는 가슴은 아팠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A씨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더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쁜 방어기제란 없다

 

인간은 허약한 존재이므로 상처를 입으면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으로 기제를 발달시킨다. 상처를 받을 당시에 사용한 방어 기제는 그때는 정말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달라지면 방어의 효과는 사라지고 역효과를 내는 경우들이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방어기제를 계속 사용한다는 건 마치 오래되면 파이프에서 녹물이 나오는 것처럼  당시엔 유용했어도 언젠가 그것이 독이 되는 것과 같다.    


 

방어기제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적 용어.     


미성숙한 방어기제: 억압, 부정, 퇴행, 투사, 반동형성, 취소, 보상, 격리, 신체화 등 

성숙한 방어기제: 이타주의, 유머, 승화, 합리화, 지성화, 이타주의 등    


사람들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부정적이고, 성숙한 기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다양한 방어기제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부장님이 화를 내면 억울해도 참게 되는데 이때는 미성숙한 기제인 ‘억압’이 작동되고, 연애를 하면 낯간지러운 언어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데 이때는 미성숙한 ‘퇴행’이 작동된다. 또한 로또당첨이 안되면 속상한 마음에 ‘인간이 노력해서 살아야지’라고 합리화를 하며 자기를 보호한다. 즉 방어기제란 성숙과 미성숙의 구분으로 좋고 나쁜게 있는게 아니다.         

방어기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작은 표현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1.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인식한다.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무슨 상처인지, 얼마의 크기로 받았는지 알아야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     


2. 인식된 감정들은 표현되어야 한다.   

감정은 표현되어 확인되는 과정을 거쳐야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3. 불편한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믿고 표현한다. 

억압하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사소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말하기 어려워서 묻어두게 된다.       


방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맨몸으로 밖에 나가서 생활하는 것과 같다. 날이 더우면 얇은 옷을 입고,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고, 비가 오면 비옷을 입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나의 기질과 상태를 잘 아는 것에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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