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소장 Oct 23. 2019

난 우울하지 않아요  

무기력감과 회피에 익숙했던 B군의 이야기

 우울하지 않아요


B군(23세)은 남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다.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 학점은 학사 경고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학교를 갔다 올 때마다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온다고 했다. 학교 외에는 집에서만 생활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만하며 지낸다고 한다. 아들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머님의 통사정으로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B군에게서는 윤기나 빛, 밝음,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분위기는 없고, 어둡고, 칙칙함, 무의미, 무미건조 등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B군 스스로는 우울하지 않다고 하며 지금처럼 사는 것이 편안하고 좋다고 말했다. 


만나는 순간부터 B군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나는 이 젊은 청춘을 어떻게해서 사회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할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B군은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불편했다고 한다. 항상 사람들을 피하고, 또 피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힘든 것은 무조건 피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부모님은 헌신적으로 B군을 양육했고, 그나마 편하게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B군이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했던 유일한 이유였다. 

고등학교까지는 교사 말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니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르지 않았던것 같다. 물론 친밀감을 나누는 친구의 경험은 거의 없었다. 


매일하는 게임도 복잡한 게임은 못하고 주로 단순한 게임만을 한다. 이마저도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B군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되돌아 봤을 때, 힘들고 불편한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노력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힘들고 불편할 때 어떤식으로든 극복을 위한 노력을 한다”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불편해도 피하면 더 힘들어질까봐 견디기도 한다”


이런 말들을 B군은 너무나도 생소하게 느끼는 듯 했다. 



겁나도 해보고 싶어요


상담은 매우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B군은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버틴 후에는 긍정적인 것이 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래도 상담은 규칙적으로 왔다. 나의 쓴소리도 자주 들으면서 아주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무기력하고 의지도 없는 B군에게 나는 집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작은 과제들을 내주기도 했고, 그는 작은 실천들을 해보았다.  10회기 정도 되었을 때 즈음 B군은 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은데, 처음해보려니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알바에 대해 조사도 해보고, 면접 예상 질문도 나눠보았다. 그는 어느날 알바 면접을 보고왔다고 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면접은 처음보다 잘 본 것 같다고 했다. 


이 상담은 그 후 1~2회기 정도 더 진행되고 예정된 회기에서 종결되었다. 처음 상담실을 찾았을 때 B군은 깊은 늪에 빠진 사람처럼 무기력해보였지만, 상담을 마칠 때 즈음에는 무언가 시도해보려는 마음의 싹이 조금씩 움트는 것 같은 경험을 하며 상담은 마무리 되었다. 

이전 08화 누구에게나 방어기제가 필요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