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80세가 되던 해에 고향으로 귀촌을 하셨다. 선산도 있고 고향사람도 있고 동창들도 여러분 계셔서 처음엔 놀러 다니기도 하고 말벗도 있어서 좋아하셨다. 뒷마당에 텃밭도 가꾸고 농사도 조금씩 하셨다. 주말이면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니 엄마 아버지에겐 즐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정착한 지 1-2년 후쯤 동네 윗자락 터에 '평화도서관'이 생겼다. 몇몇 분이 공동체를 만들어 집을 짓고 도서관도 만들면서 마을에 들어온 것이다. 심심하던 엄마의 관심이 그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동네 어르신들을 처음 초대한 자리에 엄마는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매월 1만 원씩 회비도 내고 책도 빌리며 자주자주 놀러 가시는 것 같았다. 심심하던 차에 좋은 사람들과 멋진 공간을 만난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여를 왕래하시다가 부모님은 근처 다른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버스 편이 마땅치 않아 평화도서관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엄마는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 시작하셨다. 집에 가보면 고개가 꺄우뚱하게 되는 어려운 책도 빌려다 놓고, 쉬운 그림책도 있다. 엄마 눈에 좋아 보이는 책들을 이것저것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나에게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개가식 도서관이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있는 그곳이 참 좋았다. 그런데 난 뭘 읽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꺼냈다 올렸다를 반복했던 즐겁고도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이해가 되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서 몇 번을 읽어야 이해가 된다고 하신다. 잠이 안 올 때 읽으면 자는 용도로도 쓴다고 하셨다.
지금 우리 집에서 엄마에게 내어드린 방은 서재다. 처음에 엄마는 거실이나 주방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방안에 많이 계신다. 엄마는 등받이에 기대서 유튜브를 보시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서재에 있는 에세이 책들을 이것저것 꺼내 읽으시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옆에 있던 책을 보여주시며 유튜브에서 봤던 교수인데 책도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신다. 엄마의 눈에 그림처럼 보였던 글자들이 제대로 된 내용으로 읽히시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그동안 '엄마 이미지'는 일하는 엄마, 움직이는 엄마였는데... 이제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