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시콜콜 Aug 03. 2018

"저녁 먹어라"

#034_걱정

썼다 지우기를 이틀, 하루 종일 타자를 두드렸지만 단 한 줄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시나 펜을 잡아봤지만 그도 헛일. 웨이브 타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손톱으로 자판을 톡톡 건드리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한 줄을 기다린다.


"옥수수 먹어라"


어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딱히 불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귀찮다. 오랜 시간 글이 써지지 않은 짜증일 테다. 그렇다고 밖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그 정도로 철딱서니 없진 않으니.


"네"


집에서는 대화가 간결하다. 어머니와 대화할 때면 간혹 물꼬가 터지긴 하는데 아버지와는 3페이지 정도 되려나 싶다. 평생 동안의 대화 분량이 말이다. 


옥수수를 먹으며 생각해도 딱히 쓸 만한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왜 글을 쓰렸는지 의심한다. 먹고살 길도 없으면서.


방으로 들어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소설책은 잘 읽지 않는데, 괜히 어려운 책으로 짜증만 늘여가는 것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한 권이 낫겠다 싶다. 


"응? 응. 오~ 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추임새를 중얼이며 집중한다. 초입엔 흥미가 떨어질 뻔도 했지만 다행히 완전히 몰입했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소설을 읽지 않은 이유는 인물들의 이름을 외지 못해서다. 소설 초반 완전히 집중했다가도 중반쯤 넘어가면 캐릭터들이 마구 뒤섞이며 독서를 방해한다. 방해하는 걸까? 방해되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셜록 홈스와 같이 주인공과 조연이 돋보이고 스토리 흐름만 이해하면 되는 소설들은 읽을 수 있지만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은 읽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심지어 주인공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화면으로 인식할 수 있다 보니 이름 외는걸 중요히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책 선택은 아주 좋았다. 등장인물이 넷 뿐이다. 


"저녁 먹어라"


오늘 두 번째 어머니의 부름. 이번에도 중간에 맥이 끊겨 조금 짜증이 났지만 바로 책을 엎은 채 밥을 밥을 먹으러 나간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지만 무슨 정신으로 답변하는지,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머릿속엔 온통 책 생각뿐이다. 


다시 방에 들어와 책을 들었다. 


"아..."


다시 책을 놓는다. 이내 방을 정리하고 거실에 나가 어머니와 맥주 한 캔을 나눈다.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허망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며.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는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