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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Sep 30. 2018

낮 술

#062_젖음

1)

이번 주 내내 흐렸는데 토요일 아침 하늘은 푸르다. 침대맡 창으로 날씨를 맞이한다. 주말이지만 늘어지지고 싶지 않아 강시처럼 획 하고 일어났다. 잠이 많지 않아 8시 기상도 늦다.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할 일을 만든다. 오늘은 조금 더 빠른 6시 기상이다. 침대 끝자락에 앉아 TV를 켜니, 퇴근 후 간간히 보던 드라마가 재방영한다. 띄엄띄엄 본 터라 대략적인 스토리만 안다. 코믹한 설정의 드라마라 조금만 알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좋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 웃다 보니 오늘 할 일이 고민됐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고작 30분이지만 3시간 본 마냥 TV를 껐다. 「오늘은 간단히 먹어야겠군.」 아침 먹을 식당을 고민하며 식사 후 카페에서 공부할 책을 챙겼다.


2)

「희정 씨, 주말 잘 보냈어?」 주변인에게 안부를 묻는 편이 아닌데 궁금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주말에 날씨 너무 좋아서 우울했어요. 영화라도 같이 볼 사람 있었으면 좋겠는데 집에만 있었네요. 친구들은 남자 친구 만난다고 만나주지도 않고. 그래서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맥주를 3캔이나 깠지 뭐예요. 그러고는 집에서 혼자 기분 좋아서 날뛰다가 다음날 12시까지 자버렸어요. 저는 뭐, 그래도 좋더라고요, 주말이니까요. 팀장님은 뭐 하셨어요?」 희정 씨는 주량이 맥주 2병 정도니 집에서 혼자 3캔이나 마셨으면 많이 취했을 거다. 「나는 그냥 뭐, 카페에서 책 읽었지. 이틀 내내 그랬네.」 「에이, 재미없게 뭐예요.」 희정 씨도 평소 주절주절 말하지 않는데, 내 질문에는 답변이 길다. 「그런가? 근데 오늘 희정 씨 복장이 좀 괜찮네?」 직장 내 문제가 생길 법 한 언행이지만 그녀와 나 사이엔 문제없다. 「그래요? 괜찮아요?」 새침히 반쯤 돌아서며 내 얼굴을 응시한다. 


주말, 내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부하지 않을 그녀다. 다만 직장 내 관계는 꺼려진다. 솔직히 완벽히 자신 있지도 않다. 나를 대하는 눈은 분명 다른 눈인 걸 알지만 확신은 없다. 스스로의 심정조차 어떤 종류의 관심인지 모르겠다. 동료로서? 이성으로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못내 신경 쓰여 기분 좋아지는 말 정도나 가끔 전한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은 희정 씨에게만 하는 표현이다.


3)

한 주, 일상 뒤 금요일 저녁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영규야 부장 달았다며, 어때? 이제 부려먹을 애들 많아서 좋겠네. 너 학교 다닐 때처럼 일 미루면 밑에 애들이 싫어한다.」 사람은 좋지만 일 적으론 기피하고 싶은 그런 친구다. 10년도 전이니 바뀌었을 수 있지만 괜히 놀리려는 심보다. 「야, 넌 술만 먹으면 그 소리냐, 이젠 나도 열심히 하니까 그만해라.」 「에이, 사람이 얼마나 바뀌려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얼마나 흘렀을까? 일정도 없고 주말도 여유 있지만 막차를 이용하려 일어선다. 아쉽지만 집에 가야 한다. 


4)

이번 토요일 아침도 좋다. 드라마가 재방영한다. 왠지 모를 심정에 보던 TV를 끈다. 「밥 먹고 나가야지.」 샤워 후 간편한 복장으로 입었다. 가방을 챙기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다. 오른발을 낀 채 돌아서 집 안을 훑어본다. 늦은 저녁이나 쌀쌀할 시기지만 살갗으로 찬 기운이 스몄다. 소름이었나? 아니, 소름 보단 공허함에서 오는 시린 마음이다.


가방을 구석으로 던지고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침대 위 한쪽 벽에 기대 마신다. 혼자 마시니 한 캔에도 취기가 오른다. 


언제부터였나? 완전히 쏟아내지 못한 게,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 끝내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감정 터뜨리지 못하고, 즐거움 무르익히지 못한 것이. 술 한잔 걸친 노래방에서도 모든 걸 토해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행여 할 것을 참는 게 성숙한 거라 생각하는 건가? 책 한자 읽으러 카페로 향하는 게 더 좋은 거라 착각하는 건가? 친구들과 즐거운 술자리 조차 완성시키지 못하는 내가 뭐가 어른이라고. 


침대에 엎드렸다. 취기로 생긴 용기가 아니길 바라며 메시지를 적는다. 「희정 씨 집이 당산 이랬죠? 내일 근처 약속이 있는데 잠깐 볼까요?」, 「영규야 요즘 뭐가 좋냐? 다음 주말에 우리 집에서 파티 한번 어때? 시간 있는 친구들 모으자. 주말에 혼자 나오기 힘드니까 다들 와이프랑 여자 친구랑 데려 오라고 하는 거 어때? 음식은 내가 준비해 둘게.」 졸리지 않았지만 한 참 천장을 보고 있으니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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