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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Oct 05. 2018

그런 표현은 흔치 않은거지?

#064_나

「김상병님 근무 시간입니다.」

「우리 어디 근무냐?」

「탄약고입니다.」


새벽 1시 40분 후임병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1년 반 동안의 반복에도 새벽 근무는 적응되지 않는다. 근무, 입대 전에는 보초라 해야 알아들었지만 군대식 명칭에 익숙해 진지 오래다.


「최이병, 저번 달에 전입했나?」

「네, 그렇습니다.」

「어쩌다 늦게 들어왔어?」


최이병은 26살이다. 난 1학년만 마치고 온 터라 22살이지만 군에서 나이 따위 중요치 않다.


「일하다 늦었습니다.」

「무슨 일?」

「자동차 중고매매했습니다.」

「응? 그거 하려면 나이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20대 중반부터 많고, 제가 20살에 시작했을 때 제 나이 또래는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차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매장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게 시작이 돼서 20살 때부터 바로 영업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반대는 안 하고?」

「어머니는 대학부터 가라고 하셨는데, 아버지는 자동차가 좋아도 수리하고 만드는데 흥미가 있는 건지 꾸미는 걸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자동차 자체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가야 한다며, 무턱대고 자동차 학과를 가기보단 일 좀 해보고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아버지들과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그래? 그럼 어떡하려고, 나이가 좀 있잖아? 전역하면 28살에 입학해야 하는 거 아냐?」

「네, 그렇습니다. 고민이 많았는데, 훈련소에서 1달 생각해 보니 대학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처음엔 자동차 성능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으로 많이 공부했는데 5년이 지나고 나니 그보단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맞는 자동차를 소개해 주는데 더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을 전공해 보고 싶습니다.」


내가 입학한 이유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점수가 좋아서 그냥 좋다는 학과로 갔는데, 이제 1학년 마치고 왔지만 왠지 전공이 안 맞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

「그렇습니까? 생각하시는 다른 게 있으십니까?」

「아니, 글쎄 잘 모르겠네」


보통 이등병이 상병에게 되묻는 경우는 없지만 최이병은 사회경험이 많아서인지 다른 이등병들 같지 않다. 잠시 머뭇 하더니, 화제를 돌린다. 


「김상병님 혹시 여자친구 있으십니까?」


군 근무지에서 후임병의 연애사를 듣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다. 최이병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나와의 근무는 처음이기에 약속을 이행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니, 있을 뻔했는데 입대 한 달 두고 사귀자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편지는 가끔 주고받는데 전역할 때까지 기다려 주려나 모르겠다.」

「22살 여름에 친구가 군대 간다고 자기 아는 사람들 다 와야 한다기에 일 마치자마자 뛰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여자애 옆에 앉았는데, 글쎄 늦었다며 소주 한 병을 원샷 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나름 영업 바닥에서 다져진 간이라 거뜬했습니다. 되려 나에게 술을 주던 여자애가 잔뜩 취해서 제 팔뚝을 놓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 뭐야 처음 보는 여자한테도 잘 먹히는 거야? 너 얼굴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제가 입이 좋습니다. 한 번 털면 다 쓰러집니다.」


자동차 매매장에서 5년을 넘게 했으니 말을 못 하는 게 더 이상한 거라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그래서?」

「그때 제가 혼자 살고 싶어서 반년 정도 고시원에 살고 있었는데, 인사불성인걸 어떡합니까? 약속 장소가 또 고시원 바로 옆이라 일단 데리고 들어갔죠.」

「어, 그리고?」

「침대 위에 눕히고요.」

「어, 어」

「저는 비좁은 바닥에 쪼그리고 잤습니다.」

「응? 뭐, 그게 다야? 뭐 다른 일은 없었고?」

「다음날 아침에 순댓국 먹었는데, 순댓국 너무 맛있다고 매일 오더라고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순댓국 먹다가 사귀기 시작했죠. 」

「아, 뭐야. 야 다음부터 입 열지 마」


아직 근무가 1시간이나 남았다. 병사가 많은 부대는 근무시간이 1시간인 곳도 있다던데 우리는 규모에 비해 병사가 적은 편이라 2시간이다. 


대화가 자연스레 끊기고,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진심으로 사방을 경계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야밤의 경치에 호기심을 느꼈다. 이곳저곳 살피다 탄약고 입구 왼편의 큰 소나무에 눈이 고정됐다. 1년 반 동안이나 봐왔지만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2미터 50센티 정도 되는데, 적송? 해송?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곧게 뻗어 나는 품종이 아니라 몇 갈래로 나뉘며 퍼져 자라는 소나무 종류다.


유독 더운 군생활, 어제부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겨우 더위가 씻겨 나가려는 모양이다. 저 소나무도 반가운지 넓게 퍼진 솔잎들을 바람결에 부빈다.


(아, 내가 소나무 잎이 바람결에 부빈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던가?)


1년 반, 소나무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 어찌 그런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소나무 잎, 바닥 위로 약간씩 드러낸 뿌리, 기둥 표면들을 유심히 살핀다. 많은 솔잎들은 스치는 바람을 잡으려 애쓰는 듯 보였고, 땅 속으로 깊게 뻗은 나무뿌리들은 갈길 몰라 어둠 속 헤매는 내 모습 같아 보였다. 


(저 거친 나무껍질은 얼마나 많은 근무자들의 눈살을 받아내고 살았을까? 그 세월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네가 되었겠지.)


20살까지 숱하게 봐 왔지만 하필 지금, 이 시간에 소나무는 특별해 보인다.


「최이병은 일을 얼마나 하고 자기한테 맞는 걸 찾은 거야?」


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도중 최이병에게 물었다.


「솔직히 저에게 딱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본 중에는 가장 흥미로워하는 분야인 것 같아 선택하려 합니다.」

「최이병, 내가 아까 나무를 보면서 솔잎들이 바람결에 부비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보통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잘 안 쓰지? 그런 느낌 받는 게 흔하지 않은 거지?」

「드라마에서 그런 말들은 자주 봤지만, 실제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사람은 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하고 그런 느낌을 받아왔던 걸까? 지금? 어렸을 때부터?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하필이면 1년 반 동안이나 봐왔던 소나무 앞에서.


「최이병, 내가 이런 거 물어본가 다른 애들한테 말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근데 김상병님 평소에도 그런 표현 많이 사용하십니다. "새벽바람이 목덜미를 비집네", "6시 밖에 안됐는데 어둠이 묵직하네"처럼 말입니다. 아까 근무 나올 땐 오늘 걸그룹 신곡 좋다며 "심장이 꽃밭 같네"라고 하셨습니다. 표현들이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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