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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Oct 13. 2018

날것의 공간

#065_날것

겹쳐 입기엔 쌀쌀한, 벗기엔 추운 가을 공원, 웅크린 목을 타고 스며드는 추위가 옛 기억을 꺼낸다. 초심의, 시작의, 새로운, 신선한, 싱싱한, 순수한, 꾸밈없는... 인생의 시작이라 여겼던 20살의 기억은 그리 꺼내졌다.


'날것', 20살의 추억을 한 번에 묶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단어가 있으랴. 너무 튀겨져서 그리고 너무 삶아져서 딱딱하고 퍽퍽한 지금의 내가, 날것일 때의 나를 부러워한다. 한 걸음 조차 두려워 조약돌로 확인하는 30대 에게도 냅다 달렸던 20대가 있었기에.


날것의 기억과 함께 걷는 나뭇길에서, 지금의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감동이 오른다. 쉬운 일은 재미있고, 어려운 일도 쉬워했던 그래서 어려운 일도 재미있던 20대가 재미있는 일 조차 힘들어하는 30대가 되었어도 추억 정도 누릴 자격은 있으니.


날것의 시절이 부럽고 그립지만 바싹 노릇이 익어버려 되돌릴 수 없다. 아니 돌릴 수 있데도 그러지 않겠다. 다시 간데도 바뀌지 않을걸 알고 있으니까.


'설렘',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잎새의 끝자락부터 가을을 준비한다. 작년에도 봤던, 제 작년에도 봤던, 그리고 그 전에도, 그 전에도 또 그 전에도... 익숙할 때도 됐지만 여전히 설렌다. 앞으로 몇 해가 더 지나도 찾아오겠지, 날것의 싱그러움은 없는 까끌한 가슴으로 입장하겠지, 날것이 빠져나간 공간을 가득 매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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