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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Nov 13. 2018

만질 수 없는 과거

#070_회상

어둑한 저녁, 8시나 지나고 있지만 밥을 먹기도 무엇을 하기도 싫다. 침대 모서리 벽에 기대앉자 맞닿은 등으로 시원함이 전해지며, 갓 시작된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시원함을 느낀다. "어릴 적엔 한 여름에도 벽은 차가웠는데." 옛 생각이 떠 올랐다. 한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던, 오래전 촌동네가.


어릴 적 생각에 잠겨있던 이유인지, 스마트폰을 켜자 2000년대 초반 드라마 ost 모음 영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영상을 재생하자 익숙한 노래와 영상이 재생된다. "이 드라마 좋아했는데", "와, 이거 군대에서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이거 감동적이었지", "이게 벌써 이렇게나 오래됐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점점 몰입한다.


10초 정도 짧막히 편집되어 붙여졌건만, 음악과 영상의 조화 때문인지 고조된 감정선이 끊김 없이 머무른다. 사이사이 슬픈 줄거리의 드라마가 나올 때면 감정은 더욱 깊이 고조되고, 시야 가장자리부터 뜨거움이 차 오르기도 한다.


10분 남짓, 영상이 끝났음에도 흐른 눈물의 여운으로 심장은 과거의 시간에 우두커니 멈춰있다. 슬펐던, 즐거웠던 그러한 감정들을 더 느끼려고 말이다. 지금의 슬프고 즐거운 감정들과 그때의 슬픔과 즐거움은 질감이 다르다. 냄새도 다르다. 옛 생각에 냄새가 난다는 건 어찌 알았으랴? 그런 이유로 향수였을지 모르는 향수와 느껴질 리 없지만 느껴지는 꺼끌한 과거의 질감을 만지고 맡으며 또 다른 영상을 재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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