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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an 03. 2019

인간 쓰레기통(2)

#080_사건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1시쯤 도착 아니었어? 뭐하느라 2시가 다 돼서 들어온데?"


요즘 세상에 비밀이 있을까? 공원 산책하는 시간까지도 이리 벗겨지니 말이다.


"아이고, 개인적인 시간까지 파헤치지 말아 주셔."


"뭐야, 사고라도 친 거야? 괜찮은 여자라도 봤어?"


"산책 좀 했다. 너희 단지 공원 좋잖아."


"오빠 안녕하세요."


얼굴은 백지장처럼 희고, 홑꺼풀에 어깨를 스치는 단발이다. 청바지에 사이즈가 큰 황갈색 셔츠를 밖으로 꺼내 입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떠들고 다니던 이상형과 닮았다. 어렸을 때라면 말도 제대로 못 붙였겠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긴장하지 않는다.


"반가워요.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영상통화로 한 번 뵌 것뿐인데 자주 본 것 같네요. 하하, 선아가 자주 얘기해서 그런가 봐요."


"저도요. 선아가 오빠 얘기를 얼마나 하던지. 처음엔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 뭐예요."


"선아 가요? 둘이 한 침대에서 자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하하, 근데 성이 어떻게 되세요? 만능 시계가 그런 건 안 가르쳐 주더라고요."


"저는 최 씨예요 최혜진입니다. 오빠는요?"


"저는 김선우입니다."


"어머, 이름 들으니까 선아랑 남매 같아요. 그런 얘기 많이 들으셨죠?"


"네,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여자 친구인 줄 알다가 이름 말하고 나면 그렇게들 생각하더라고요. 같은 과도 아니었는데, 연인은 아니지만 인연은 있었나 봐요. 닮은 구석도 없는데."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선아가 배를 쥐며 끼어들었다. 


"에헤이, 그딴 라임 넣지 말라니까. 둘이 좋은 시간은 있다 보내시고 점심 메뉴부터 고르시지요. 배고픕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앉읍시다."


이럴 땐 진짜 친동생 같기도 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익살스럽게 답한다.


"오, 질투야? 남매끼리 질투하는 거 아니야."


"정신 나간 소리 말고 점심이나 골라."


혜진이 두 눈 동그랗게 쳐다보며 말했다.


"전 오빠가 추천해 주는 걸로요. 등록하신 거 중에 하나 추천해 주세요."


선아는 메뉴 고르기 귀찮다는 듯 시계 화면을 휙 끄며 말했다.


"그래, 오빠가 오늘 저녁 세팅해줘."


음식메뉴 사진을 띄우고는 당연하다는 듯 주류 종목을 물어본다.


"술은 뭘로 할래?"


조금 이상할 법도 했지만 둘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난 와인, 스위트한 걸로."


"저도요."


대부도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생각났다. 묵직하고 단 맛을 가지면서도 아주 옅은 떫은맛이 있는데, 대부도 포도 특유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어 매력적이다.


"삐빅, 대부도 포도주랑 3인 세트 준비해줘, 치킨 샐러드 들어간 세트로."


"치킨 샐러드를 포함한 3인 세트는 3번에 저장하신 세트로 치킨 샐러드, 케일 샐러드, 타코 샐러드, 올리브 파스타, 엔초비 피자 요리가 제공됩니다. 제작 시간은 30분입니다. 이대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삐빅, 그대로 주문해줘."


제작 시간을 수정하지 않으면 손수 요리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제공된다. 과거의 감성을 버리지 않으려는 개발자의 의도인 것 같은데, 원한다면 10분 내 까지 줄일 수 있다. 이 정도 요리는 5분 내에도 가능할 것 같은,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혜진 씨 대부도 포도주 마셔봤어요?"


"아니요, 처음 들어봐요."


"아이스 와인 좋아해요?"


"저는 드라이한 것보다. 단 게 좋아요."


"아이스 와인 업그레이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대하세요. 근데 선아랑은 언제 알게 되셨어요?"


"3년 전인가? 전시회에서 만났어요. 구경하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누가 부르더라고요.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처음엔 못 알아봤는데, 졸업사진 보고 알아봤지 뭐예요. 선아가 고등학교 땐 엄청 조용하고 얌전해서 존재감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띵동 띵동"


요리가 도착할 시간이 아닌데 초인종이 울렸다. 의야 하다는 듯 선아와 혜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요리 도착할 시간이 아닌데?"


"삐빅, 현관에 누구야?"


선아가 명령하자 허공에 현관 화면이 뜨며 시계가 말했다. 


"대전 3 지구 파출소 최현호, 박진원입니다. 부재중으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국제 인권법에 따라 부재중으로 할 수 있지만, 선아는 화면을 끄고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어떤 일이시죠?"


"안에 김선우 씨 계신가요?"


선아가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빠 찾는데?"


혜진과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무슨 일이시죠?"


"안녕하세요. 대전 3 지구 파출소 최현호 경위입니다. 단지 내 살인사건 발생으로 관련자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선호 씨 위치는 법적 허용 범위에 따라 차량 이용 내역과 김선호 씨와 개인정보 공유에 동의된 관계도 정보를 이용하여 파악되었습니다. 김선호 씨 금일 차에서 하차한 1시 10분부터 2시까지 개인정보 열람에 동의하십니까? 거부하실 수 있으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시 위성에 저장된 영상과 단지 내 영상이 자동 열람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이래선 지나가는 사람도 못 흘겨볼 세상이다. 


"네, 확인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시계가 울리며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전 3 지구 파출소에서 금일 오후 1시 10분 분 터 2시까지 개인정보 열람 동의서가 도착했습니다. 제공되는 정보는 본 장치에 기록된 이동경로 내역입니다. 국제 인권법상 거부하실 수 있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시 다른 장치에 의해 기록된 내역이 자동 공개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유력한 용의자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랬든 저랬든 정보는 공개되는 모양이다.


"삐빅, 확인"


"확인하셨습니다. '정보공개 확인'이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동의서가 수락됩니다."


보안 절차상 중요한 결정은 두 번 확인하게 되어있다.


"삐빅, 정보공개 확인"


두 경찰은 전용 선글라스를 통해 내 경로를 확인하는 듯했다. 동의서는 두 경찰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에 나조차도 볼 수 없다. 시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경찰이 볼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있나 보다.


"네 확인됐습니다. 김선우 씨는 이 시간부로 사건 관련자에서 제외되었으며, 본 정보내역 동의서는 저희 두 명에게 일주일 동안 유효합니다."


"혹시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을까요?"


"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입니다. 제 재량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네요. 저희도 이 장비가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5년 전 같았으면 물이라도 한 잔 얻어 마실 텐데 이젠 수사 나와서 물 한잔도 못 얻어먹는 시대가 되어 버렸군요. 아무튼 감사드리고요. 바로 아래층에서 발생한 사건이니 오늘은 가능한 출입을 삼가 주시면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네 수고하세요."


"710호 식사입니다. 공무집행 방해 금지 조항에 따라 배달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경찰이 문 앞에서 나오자 문 뒤에 가려있던 요리 배달 로봇이 튀어나왔다. 예약된 시간이 5분 정도 지났는데, 공무 집행은 방해할 수 없나 보다.


"거실 탁자로 가져다줘"


"저 이런 거 처음이에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는 경찰을 본 것도 처음이네요."


순찰이란 게 사라진 지 5년이니 친구가 경찰이지 않고서야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다. 선아가 포도주를 따르며 말했다.


"이상할 일이야, 경찰 채용조건이 훨씬 더 까다로워졌는데, 입시 지원자가 더 많아진 게 이상하지 않아? 이 좋은 세상에 말이야."


"선아야, 내가 보기에 이 좋은 세상에 굳이 그림 그리겠다는 너도 신기해 보여."


양 볼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잠시 생각하더니 짧게 답한다.


"그러네."


혜진이 잔의 포도주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선아야 오늘 아침이 인간 쓰레기통 법안 통과했다는 뉴스 봤어? 선우 씨 방송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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