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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Dec 29. 2018

인간 쓰레기통(1)

#079_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 법안이 모든 심사를 끝내고 공포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뜨거운 논의에도 인권문제로 발휘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요. 대한민국은 어떤 연유로 이 법안을 추진하게 되었는지 권수천 의원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1세기 세계는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누구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걱정할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반면 치솟는 범죄율은 수년간의 치안 강화 노력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인간 쓰레기통 법안은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직장이 사라진 지 5년째 치열하던 생활은 온데간데없고, 약속 없이는 밖으로 나갈 일도 없다. 그나마 간간히 즐기던 요리도 작년부터 가정 내에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먹고 싶은 음식이 때 맞춰 눈 앞까지 오는 것은 편한 일이겠으나 맛집 찾아다니던 지난날이 그립다.


'띵동 띵동'


"응 선아야"


"오빠 오늘도 집이야?"


"응 5일째 집에서 TV만 보고 있다. 지겹다 지겨워 뭐 일 없냐? 어차피 이제 돈이란 개념은 없지만 돈 안 줘도 좋으니까 일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22세기로 넘어오면서 정치, 법, 예술, 스포츠, 천문학자, 인류학자, 철학자 등 고등학문이나 예체능 계열을 제외하곤 모든 직업이 사라졌다. 당연히 사라지기 전엔 사라지길 간절히 바랬지만 막상 사라지고 나니 허전하다.


"그러니까 오빠도 나처럼 그림 배우라니까, 요즘 요리모임도 시들하다면서?"


"응, 모임은 괜찮은데, 그냥 나가기가 좀 싫네."


"자동 수집 때문에 그러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즐기지 그런 것 까지 따져서 요즘 세상 어떻게 버티려 그래."


요리 모임을 꺼리게 된 건 최근 시행된 법안 때문인데, 완성된 요리를 로봇이 자동 수집하고 데이터화 해야 하는 법안이다. 여러 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요리는 식단에 등록되기도 하는데, 원한다면 방금 지구 반대편에서 등록된 요리를 당장 먹을 수도 있다. 처음 로봇 식사 제도가 시행됐을 땐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요리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요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요리가 즐겁지 않다.


"내 것이 없는 것 같아. 분명 내가 개발한 요리는 맞는데, 내 이름으로 등록돼도 왠지 내 요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거부감 드나 봐."


"또또, 옛날 소리 하려 그러지? 그럴 거면 집어 치고, 오늘 나 친구들이랑 한잔 할 건데 놀러 와 저번에 오빠 요리 먹었던 친구가 꼭 불러달래."


"내 요리? 로봇이 만든 요리겠지. 하하. 혜진인가 그 친구 말하는 거지? 아무튼 알겠어, 5일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내가 살아는 있는지 의문이 든다. 씻고 바로 갈게."

욕실로 들어서자 로봇이 알아서 세면용품을 가져다준다. '씻는 것도 내 손으로 안 씻는 세상이 오겠구먼.' 따뜻한 물 가득 담긴 욕조에 앉아 수발드는 로봇을 응시한다. '넌 날 감시하는 거니, 도와주는 거니, 아니면 날 사육하는 거니?'


"삐빅, 음, 오늘 아침 9시에 22번에서 나온 드라마 남자 주인공 스타일로 부탁해, 신발은 구두 말고 운동화가 좋겠어. 그리고 대전 김선아 집으로 15분 뒤에 출발할 수 있게 차 부탁해"


"아침 9시 22번 채널 남자 주인공 스타일, 신발은 운동화. 대전 김선아 친구 집으로 15분 뒤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5년 전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지고 로봇이 대부분의 일을 수행하게 됐을 때 소통수단이 될 전자장치를 팔뚝에 심으려 했지만 세계적인 반대 시위로 시계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목걸이나 귀걸이와 같은 대체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없이 다닐 순 없다. 사실 이 장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떼 놓고 다닐 수도 없다. 한 번은 술에 취해 술자리에 시계를 두고 집으로 걸어온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나 보다 시계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자동 배달인가 보다.


"삐빅, 김선아 친구 혜진이랑 언제 봤었지?"


"혜진 님과 2213년 5월 11일 오후 8시 김선아 님의 영상통화에서 대화하셨습니다."


"삐빅, 성이 뭐야?"


"보안상 더 이상의 정보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혜진 님과 대화 정보 공유 및 활용 동의서에 서명하시기 바랍니다. 본 동의서는 오프라인상에서만 서명이 가능합니다."


보안 관련 일은 최고의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편한 세상에도 굳이 힘든 일을 하겠다면 말이다.


"삐빅, 해안도로 쪽으로 가자."


"해안도로 경로 이용 시 김선아 님 집까지 2시간 소요되며, 1시 10분 도착합니다."


"그래 바다경치 구경하면서 가자고."




<인간 쓰레기통>

처음 도전하는 소설입니다.

많은 참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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