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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an 06. 2019

인간 쓰레기통(3)

#081_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그거요? 보긴 봤는데 소파에 누워있던지라 보다 졸다 했네요. 나쁜 사람들 처벌하겠다는 일인데, 제가 솔직히 이런 거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선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혜진아 저 사람은 지금 자기 심심한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다. 예전엔 그런 얘기 많이 하더니 직업 없어지고 세상일엔 관심 없는 사람이야."


신경 쓰기 귀찮다는 듯 잔을 들어 건배를 권한다.


"술이나 마시자고요."


혜진이 짓궂게 쏘아붙이지만 입가엔 웃음기가 있다.


"선우 씨 정신 차리셔야죠 너무 타락하시면 안 돼요.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일인데 정작 시행되는 국가에 있는 사람이 몰라서야 되겠어요."


직업이 사라지기 전엔 사상이니 정치니 하는 이야깃거리에 관심 많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게 의미 있나 싶다. 자존심은 남았는지, 괜히 굽혀지는 것이 싫어 띄엄띄엄 들었던 내용들을 짜집어 말해본다.


"에이, 왜 그래요. 저도 대충은 압니다. 결국 나쁜 사람들 처벌 강화한다는 거 아녜요. 말로만 사형제도라던 처벌이 진짜 사형이 되는 그런 거 아녜요."


혜진은 얼굴에 웃음기를 없애고 허리를 펴 꼿꼿이 앉아 나를 응시했다.


"대충 맞네요. 사형집행이 사실화되는 건데요. 중요한 건 감옥에 가지 않아요. 범죄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처형되는 거죠. 물론 처형장으로 이동 후 집행되겠지만 그 이동차량을 타는 시점부터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죠. 우리 쓰레기 버릴 때 어떻게 버려요?"


혜진이 휴지를 꾹꾹 뭉쳐 거실 구석의 로봇에게 던지자 미쳐 바닥에 닿기도 전에 로봇이 움직여 쓰레기를 치운다. 


"보셨죠. 인간도 이렇게 순식간에 처리되는 거예요."


이야기가 깊어지려는 순간 선아의 손목이 반짝이며 진동음이 들렸다.


"어, 응급 속보 알림음인데?"


선아가 화면을 켜자 익숙한 공원 화면이 보였다.


"우리 단지 공원이잖아? 아까 그 살인사건 이야기인가 보다. 경찰 나간 지 30분도 안됐는데 빠르다 빨라 벌써 잡혔나 봐. 근데 이상하네. 살인사건 때문에 속보가 뜨진 않는데 웬일이지?"


"속보입니다. 금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대전 3 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목이 통째로 잘린 살인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권수천 의원의 둘째 아들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 쓰레기통 법안 통과와 권수천 의원 둘째 아들의 토막 살인사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더 이상한 것은 사건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범인 추적 인공지능이 상용화된 이래로 가장 오랜 시간일 듯싶은데요. 경찰 측에선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권수천 의원 측에서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현장에 직접 방문한 권수천 의원의 이석진 보좌관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권수천 의원 보좌관 이석진입니다. 현재 권수천 의원께서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전문의는 그간 인간 쓰레기통 법안 상정을 위해 약해진 체력 때문에 타격이 더 크다고 합니다. 저희 측은 이번 사건을 반대세력의 보복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인간 쓰레기통 법안의 공포를 한시라도 더 앞당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번 법안이 공포되면 모든 중범죄자들에 대해 재판결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번 범죄자에 대한 판결도 인간 쓰레기통 법안에 의해 처벌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법안에 대한 보복행위라면 공포된 법안에 의해 엄중 처벌될 것입니다."


선아가 얼굴을 찡그리며 화면을 껐다.


"이래서 속보가 떴구먼, 딱 봐도 지들이 언론사 불렀구만 연기가 아주 기가 막혀. 이젠 명분도 확실해졌네. 권수천이가 진짜 병상에 누워있기는 할까?"


혜진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말장난 대단하다 진짜, 언론사랑 정치가가 반대세력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눈 가린 우리는 듣는 대로 믿어야지 어떡하겠니. 벌써 사실화된 거 아니겠어? 자살도 보복 살인될 판이다. 


둘의 이야기에 손 사례 쳤다.


"아이고, 또 음모론이다. 소설 쓰지 말고 우린 우리 즐거움이나 집중하자고."


말을 뱉음과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바로 아래층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도 내 할 일이나 챙기자는 심정이라니. 내가 바뀐 건지 세상이 나를 바꾼 건지 모를 일에 정신들 번쩍 들었다.


"어, 이상하다. 내가 원래 이랬나? 바로 아래층에 일어난 사건인데 왜 아무렇지 않지? 혜진 씨 이거 이상한 거 맞죠?"


"네,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죠. 근데 요즘 10대 20대들에겐 그게 정상이네요. 선우 씨 참 어리게 사십니다."


오른쪽 위 조명을 천천히 응시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네요. 제가 세상일에 너무 관심이 없었네요. 인정합니다."


혜진이 무릎을 모으고 턱을 바친 오른손의 팔꿈치를 허벅에 댄 체 얼굴을 내 쪽으로 내밀고 이야기한다.


"선우 씨 그래서 그 인간 쓰레기통이라는 게 왜 문제가 되는 거냐면요. 선우 씨가 저에게 꿀밤을 때렸다고 해봐요. 근데 제가 경찰에 가서 신고를 했어요. '폭력을 당했다!'라고 말이죠. 제 입장에선 팔을 들어 위협하는 것조차 무서운 일인데, 실제 제 몸에 접촉한 것은 엄청난 공포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반대로 제가 선우 씨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해봐요. 그것도 폭력일까요? 폭력과 비 폭력성을 구분 짓기가 너무나 어려운 거예요. 지금까지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고 있던 이유도 이런 거고요."


턱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인간 쓰레기통 법안은 중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구분 지으려고 해요. 어떤 범죄는 즉결처분이고 어떤 범죄는 감옥에 가야 하는 거죠. 당연히 지금의 법도 그 모호성을 완벽히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애매한 부분이 많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생명은 다르게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인간이 인간의 사망을 결정하는 일이라고요. 제가 종교는 없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진지한 말이 멋쩍었는지 선아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분위기를 풀려한다. 선아는 획 돌아앉으며 혜진을 노려본다.


"너 지금 나한테 폭력 썼지. 쓰레기통 들어가고 싶구나?"


"그래! 넣어봐라 넣어봐."


선아가 잔을 채우며 내 얼굴을 빤히 본다.


"오빠 신경 안 쓰는 척하더니 왜 이래, 그거 조울증이야."


혜진의 이야기로 잠시 생각했을 뿐인데 심각해 보였나 보다. 양팔을 벌려 소파 위로 얹으며 여유를 부렸다.


"그냥 생각 좀 하는 걸 가지고 무슨 조울증이래, 적당히 좀 갔다 붙여라. 그건 그렇고 우리 이거 먹고 해변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할까? 혜진 씨 바다 괜찮아요?"


"네, 바다 좋죠. 근데 저는 해변에서 술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해변에서는 말 편하게 하는걸로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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