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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an 07. 2019

인간 쓰레기통(4)

#082_연루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4): 연루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 못해 포도주 몇 잔에 약간 몽롱하다.


"운전 걱정 없이 모두 마실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야"


"오빠 늙은이 같은 소리 좀 집어치워."


"맞아요 선우 씨 완전 아저씨 같아요."


"그래, 늙었지 늙었어. 누가 100살까지 산다 그러냐, 이렇게 놀고먹어서는 50도 전에 갈 거 같다. 근데 혜진 씨는 뭐 하셨어요? 지금은 하는 일 있으세요?"


"언어학 전공했어요. 학부는 철학 전공했고요. 지금은 저도 놀고먹고 있습니다."


"인문계열이시구나, 그래서 사회문제에 관심 많으신 건가?"


"오빠, 그건 오빠가 관심 없는 거라고. 어이구."


편향적인 이야기 었을까? 행여나 말투에 오해가 있었을지 몰라 재빨리 변명한다.


"아, 미안해요. 좀 편향적인 생각이었네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알아요 알아요. 괜찮아요. 지금이야 인문계열이 생산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지만 우리 학교 다니던 시절은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 시절부터 잘 단련되어 있네요. 설사 선우 씨가 그런 의도로 질문했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예요."


민망함이었는지 괜한 말을 덧붙인다.


"혜진 씨는 멀미 없었어요? 저는 멀미가 심했었거든요. 요즘이야 차가 너무 좋아서 괜찮은데 예전엔 차만 타면 조느라 정신없었어요."


"차에서 자는 것도 일종의 멀미라더니 그런 거셨군요. 저는 멀미는 없었고요.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학부 졸업하자마자 차부터 샀지 뭐예요. 부모님한테 얼마나 졸랐는지 몰라요."


교통수단이 무인으로 바뀐 뒤 지정된 장소 외 운전은 불법이다. 운전면허 외 차량 소지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기에 일반인은 구매조차 할 수 없다.


얼마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달리던 차가 갑자기 도로변으로 이동하여 멈춰 섰다.


"삐빅, 무슨 일이야?"


선아가 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문도 열리지 않고 시계도 작동하지 않자 눈이 휘둥그레 외쳤다.


"오빠 문이 안 열려 고장 났나 봐, 이거 왜 이래?"


차가 멈추고 몇 초 채 되었을까? 무장되어 보이는 차가 옆에 멈춰 서더니 낮에 본 경찰 둘과 무장경찰 넷이 차를 둘러쌌다. 경찰이 문을 열자 안에선 안 열리던 문이 열렸다.


"김선우 씨 금일 낮 발생한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거부하실 수 없습니다. 반항할 경우 무력 제압당하실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이미 다 확인된 일 아닙니까?"


"프로그래밍 전공하셨죠? 프로그래밍 관련 강의도 하셨고요. 김선우 씨 1시에서 2시 사이 활동내역이 임의로 변경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학부 때 전공이고요. 지금은 정말 달라서 뭐가 뭔지도 모릅니다. 강의도 학원에서 잠깐 가르쳤던 것뿐이고요. 프로그래밍 안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지금 제가 뭘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무장경찰 둘이 양 팔을 잡으니 별도리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아와 혜진을 보니 우선 둘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뭐야 무슨 일이야? 왜 이러는 거야?"


"선아야,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분명 무슨 다른 문제가 있는 걸 거야. 혜진 씨 걱정 말고 있어요. 금방 끝날 거예요 바로 돌아갈게요."


둘을 안심시키려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차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밖을 내다볼 수 없으며 시계도 작동하지 않는다. 선아의 당황한 얼굴이 맘 에쓰여 연락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환풍구로 들어오는 공기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김선우 씨 본인의 활동내역을 조작한 사실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방이 막힌 공간의 적막을 깨는 건 취조의 목소리다. 차량 내 경찰의 목소리는 아닌 듯하다.


"누구시죠? 저는 그런 적 없고요. 왜 시계가 작동하지 않죠? 왜 연락할 수 없는 건가요? 이거 침해행위 아닌가요?"


"지금 대화는 김선우 씨 재판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으니 정확한 사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력한 용의자에 대한 외부와의 차단은 합법적인 제재입니다.."


"재판? 재판이라뇨? 제가 하지도 않은 일에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거죠?"


"김선우 씨는 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재판은 불가피합니다."


용의자, 재판, 조작. 갑자기 알 수 없는 일들이 밀어닥쳤다. 거대한 불안이 스며올라오자 조금의 여유조차 사라지고 목이 조였다.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겁니까? 알겠습니다. 중앙 검찰청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중앙 검찰청이라뇨?"


벽을 두드리고 소리쳤지만 더 이상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중앙 검찰청이라니?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공간이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한치도 감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시키는 건 같이 탑승했을 경찰에 의해서다.


"김선우 씨 최현호 경위입니다. 복잡하시겠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김선우 씨가 소지한 장비에 활동내역이 수정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사망자가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것, 하필이면 그 국회의원이 인간 쓰레기통 법안을 추진 중인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그 두 사건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들으며 무력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떠올랐다 혜진이 했던 한 마디. '자살도 보복살인이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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