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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an 08. 2019

인간 쓰레기통(5)

#083_구치소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4): 연루

인간 쓰레기통(5): 구치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무장경찰 둘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나의 억울함이 받아들여질 상황이 아니다. 검찰청 앞엔 각종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가득했다. 방송으로만 봤던 그런 광경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보다 더 엄청난 광경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직접 질문하지 않는 언론사들을 보니 언론사를 직접 불렀을 거라던 선아의 말이 떠 오른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아직 용의자다. 용의자이지만 유력한 용의자이다. 유력한이라는 단어, 지금 이 세상에선 가해자나 다름없이 받아들여진다. 아직 용의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 수갑을 차지 않은 손목, 포박하지 않고 옆에 서서 동행할 뿐인 무장경찰.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며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간신히 참아낸 심장이 요동하기 시작한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저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소리치자 무장경찰 둘이 내 팔을 굳게 잡는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통제당하자 걸음도 더뎌진다. 진짜 범죄자가 된 것처럼 끌려가는 모습이 됐다. 두 층이나 올라왔을까?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중의 모습은 사라졌다. 단호하고 짧은 목소리로 명령이 내려진다.


"들어가!"


취조실이다. 방송으로만 보던 딱 그 모습이다. 저 검은색 유리, 검은색 유리 뒤에는 누가 있는 걸까? 혼란과 의혹이 짙어졌다.


"거기 뒤에 누가 있는 거죠! 저는 아무 죄 없습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김선우 씨 진정하고 앉으세요."


"아뇨, 저는 아무 죄 없다고요. 단지 공원 경치가 좋아서 구경했을 뿐이에요. 저는 이거 조작할 줄도 모른다고요."


"진정하고 앉으세요. 사실은 다 밝혀질 겁니다. 자꾸 이렇게 방해하시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로 보이는 사람은 큰 소리 없이 나를 압박했다. 겨우 의자에 앉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아 한참 두리번거린다. 


"김선우 씨 지금은 예전과 다릅니다. 법이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아요."


"아니요 저는 아니라고요. 왜 그러세요. 유력한 용의자라도 용의자일 뿐 아닙니까? 지금 상황은 명백한 인권침해 아닌가요?"


"아직도 예전 생각하시나 보군요. 용의자는 김선우 씨뿐이고 게다 활동내역이 수정되어 있습니다. 개인정보는 법적으로 수정 불가능하고요. 이미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저는 이거 어떻게 바꾸는지 조차 모른다고요!"


검사는 말없이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요. 말하지 않으셔도 곧 밝혀질 겁니다."


검은 창문으로 손짓한다.


"여기 김선우 피의자 구치소로 송치해 주세요."


"구치소라니요? 피의자라니요? 제가 왜 갑자기 피의자가 됩니까?"


검사는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고 무장경찰 둘이 굳게 팔짱을 꼈다. 인간으로서 존중은 완전히 상실당한 채 구치소로 끌려갔다.


방송으로 보던 구치소와 다르다. 사방이 막혀있고 혼자다. 역시 시계도 작동하지 않는다. 언젠가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떠 올랐다. 초소형 전자장치들을 신체에 심을 수 있게 되면서 교도시설도 외부와 차단 가능토록 변경된다던 말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시간 바로 선아 집으로 들어갈지 않은 것이 후회될 뿐이다.


"아, 선아!"


걱정하고 있을 선아가 떠올랐다.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조리고 있을지 생각하니 무서움과 두려움이 커진다.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됐을 거라 자책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우리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진정하려 애쓴다. 최악을 생각한다. 인간 쓰레기통, 그게 문제였을까? 내가 세상일에 관심 없는 게 문제였을까? 혹시 그런 걸로 벌 받는 걸까? 직업이 사라지곤 얼마나 나태하게 지냈던가. 언제나 확신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누구보다 열정 있는 사람이었는데. 신이 있다면 벌을 내리는 게 분명하다. 


최악, 최악은 역시 사형이겠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받지 않는 게 이상한 세상이니. 이 짧은 사이 법안이 공포되면 분명 사형이겠지. 즉결 처형되는 걸까? 나는 인간 쓰레기통의 시범케이스 일까? 


어렸을 적 어느 날 생각했던 즉결 처분. '저런 놈들은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야지 왜 살려두는 거야? 콩밥 값도 아깝다.'의 첫 주인공이 내가 되는 걸까? 충분히 그럴만하겠지?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나와 한참을 웃는다. 


겨드랑이 사이 옷깃 스치는 옅은 소리까지도 되돌아오는 공간. 좁은 이 공간이 무한히 황량하다. 이 곳에서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면 무너질 것이다. 진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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