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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an 12. 2019

인간 쓰레기통(6)

#084_고뇌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4): 연루

인간 쓰레기통(5): 구치소

인간 쓰레기통(6): 고민


구석수석 서성이고 앉고서기를 반복해도 독방인지 구치소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공간이 망상을 갈구한다.


"하필 왜, 왜."


왜 하필 나일까? 왜 그 시간에 그곳에 갔던 걸까. 초대한 선아를 원망해야 할까? 혜진을 원망해야 할까? 그동안 나태했던 나를 원망해야 할까? 5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이 정신적으로 풍족했데도 이 상황이 벌어졌을까? 후회스럽다. 혹시 그 시간이 달랐다면 지금이 달랐을지 모르기에.


"진정하자, 진정하자, 진정하자."


손 사례로 사라질 허상이 너무 짙다, 선명하다. 뺨을 꼬집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후려쳐 보지 않아도 사실이란 걸 안다.


"진정하자 제발, 후회한데도 바뀌는 건 없잖아."


바뀌는 건 없잖아. 그 말이 위한 이었을까? 겨우 한 번 뱃속 깊이 숨을 내려 쉰다. 고뇌는 사태를 안정시킬 수 없다.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 조금이나마 사태를 바꿔보려면 정리해야 한다. 지금을.


1시 10분 아파트 공원, 선아 집에 들어간 게 2시 조금 넘었을까? 위치 조작? 내 위치가 조작되었데도.


"아! 영상."


시계는 조작되었지만 단지 내 영상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 원본을 구한다면 말이다. 그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희망은 있다. 공원 내 그리고 엘리베이터 영상, 확인할 수 있을까? 시계, 시계도 가능성이 있다. 권력에서 시작된 모함이라면 애초에 조작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논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자."


과거, 엔지니어란 직업은 응당 순차적인 생각이 능숙해야 하는 직업이었으나 5년이라는 시간은 생각의 틀을 바꾸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 사이 제대로 한 일이라곤 요리밖에 없으니 관념이 변화하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내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 시계의 조작 여부와 공원 내 영상이다.


마음이 점점 안정을 찾는다. 몇 시간이나 뛰었을까? 요동치던 가슴이 잦아들자 뻗뻗하던 어깨가 내려앉았다.


"왜 그랬을까? 왜 나를 모함했을까?"


나라서 용의자로 지목된 건 아닐 거다. 권수천의 아들이라는 건 그 시간, 그 장소, 그 사람을 알고 있어야 하는 특이점이 있으니 내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이가 지목됐을 것이다.


"지목?"


왜 지목이라 생각하지? 혹시 의도적인 타살이라는 걸까? 그러면 왜? 아니다 이건 억측이다. 지금 풀어야 할 의문은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왜 살해했는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누가, 왜 나에게 누명을 씌웠는지 알아야 한다.


혹시 우연일까? 우연한 살인이 이 정도까지 치밀할 리 없겠지. 보복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보자. 권수천의 법안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살해 동기는 있지만 사건이 되려 인간 쓰레기통을 지지하는 꼴이라는 걸 생각 않았을 리 없다.


개인 원한에 의한 살인일까? 이걸 분석하기엔 정보가 없다. 혹시, 권수천이? 왜? 이미 법안이 통과된 마당에 그럴 이유가 있을까? 가족사에 문제가 있었을까? 역시 정보가 없다.


지금껏 생각했던 것을 모두 밀어내려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내쉰다.


"후, 다시, 다시."


전부 고려하자. 진짜 살해범이 있다면 왜 이리 빨리 처리되느냐의 문제다. 법안이 지지를 받기 위해서? 그래서 온갖 언론을 동원한 것일까? 평소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의도적 살인이었다면? 그렇대도 명분은 충분하다. 어떻게 생각해도 결국 법안의 지지를 위해서라는 결론에 이른다. 범행이 어쨌건 모함이라는 건 확실하다.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것, 모함을 밝혀내는 것 어느 것 하나라도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위잉, 취침시간입니다. 모든 재소자는 취침에 들기 바랍니다."


위잉 소리와 함께 한쪽 벽면에서 침대가 나온다.


"10시인가?"


내일 취조에서 나는 어떤 걸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 가능한 무엇이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선아를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옅은 가능성에라도 도전해야 할 테지만 누운채 바라보는 천장은 가슴 쓰리다.


부모님.


"벌써 뵈러 가면 슬퍼하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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