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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기 Aug 12. 2020

유행병 뒤의 삶

#108_존재

공기로 전해지는 유행병은 사람들을 집 안에 머물게 했다. 오직 허용된 사람만이 우주복 마냥 두터운 옷으로 밖을 나다닐 수 있었다. 대다수의 일이 로봇으로 교체된 건 2년도 지나지 않아서다. 그런 덕분에,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다던 설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두 눈으로 밖을 보는 건 7년 만이다. 인적이 없던 덕분인지 밖은 깨끗했지만, 하필 밖을 내딛는 첫날이 비 오는 어두운 날이다.


"스읍, 후"


물 마시듯 한 움큼 공기를 마셔 내뱉는다. 냉온풍기로 만들어진 공기와 다름이 한 번에 느껴졌다. 작은 산소 입자가 날카로이 폐를 찌르는 듯도 했다. 물론 그것이 날 찌를리는 없지만,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짜릿함일 테다.


"스읍, 후"


이번엔 코로 한 가득 들이켰다 내뱉는다. 비 비린내와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맑아지며, 눈동자가 또렸해진다. 하필이라 생각했던 오늘 날씨가 고맙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으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큰 소리는 한동안 들어본 적 없는터라 귀가 아프기도 하지만 그 조차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부분이다. 


갇힌 7년의 세월은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높낮이도 없는 2차원의 삶이었다. 정부의 정책으로 대부분이 획일화된 이유다. 정부차원에서 그것은 매우 효율적이었지만 개개인의 만족감은 채울 수 없었다. 특히 나는 정각 정시에 배달되는 식사가 불만을 가졌다. 매번 동일한 시간의 식사는 마치 배출되는 시간마저 통제하는 것 같아서다. 잔뜩 먹은 밀가루에 더부룩한 불쾌함을 느껴보고 싶은 정도다. 갑작스레 닥친 유행병이 장기화되는 바람에 미처 대처할 시간이 없었건만, 자제력이 약해진 터라 불만을 삭히기 힘들었다.


"탁탁탁탁, 첨벙 첨벙"


뛰어가 물 웅덩이의 물을 마구 찼다. 나이가 좀 있어 뵈는 사람들은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을 따라 하기도 한다. 모두 똑같은 옷이 배급된 터라 진짜 죄수들 같다.


웅덩이를 찰 때마다, 한 방울 떨어져 나와 1미터 정도 하늘을 누비고 떨어지는 떨어지는 모습이 신기해 계속 찬다. 어떤 것은 나에게로, 어떤 것은 다시 웅덩이로, 어떤 것은 벽으로 그리고 어떤 것은 바닥으로 스며든다. 예측할 수 없는 몇 초간의 물방울 인생이, 지난 7년간의 내 인생보다, 우리들 인생보다 즐겁게 느껴진다.


한 건물이면서도 마주하지 못했던 윗집 주인을 7년 만에야 본다.


"아랫집 총각, 이제 뭐할 거야. 빨리 장가부터 가야 하지 않아? 혹시라도 또 유행병 돌면 평생 혼자 살지도 모른다고."


"하하, 맞네요. 정말 그래야겠어요. 아무튼, 지금은 빵부터 사 먹으려고요. 오래간만에 빵 잔득먹고 체해보고 싶어요. 아저씨는 뭐 하실 거예요?"


"당장 가족들이랑 여행부터 가려고. 유행병 아니었으면, 평생 못 갔을지도 몰라. 먹고산다는 핑계로 매일 바빴거든. 여기 3층짜리 이 건물, 이거 하나도 얼마나 많이 가진 거야?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았으니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갔지."


"맞네요. 어디 가시려고요. 차 시동 안 걸리지 않으세요? 버스도 지하철도 정상화하는데 꽤나 걸린다던데요?"


"어디든 못 가겠니. 이 세월에 잘데 없고 먹을 데 없겠어?"


"하긴 그래요."


하염없이 뛰는 사람, 고성을 지르는 사람, 맨바닥을 뒹구는 사람 심지어 벽을 핥는 사람까지. 모두들 각자 방식대로 세상을 느낀다. 오직 자신에게 집중한다. 오직 동물적 본능만 남아 눈으로, 손으로 모든 감각기관으로 세상을 만진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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