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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7. 2022

낯가림

마흔 즈음에

낯가림이 있는 데다 사람 얼굴까지 잘 못 알아보는 통에 괜한 오해가 생긴 적도 있다. 주변인의 도움에도 10년이 훌쩍 넘게 풀리지 않은 것도 있고 말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모른 척했다고 하는데, 안경을 쓰고 안 쓰고 차이에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은 사람에게 화장과 머리 차이까지 더해지면 삼차 미분 방정식 수준이 되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별다른 노력을 한건 아니지만, 당사자조차 내게 이유를 묻지 않은 데다 건너온 이야기라 이제는 해프닝 정도로 기억한다.


나이 먹으면 사람 다 바뀐다기에 그럴 줄 알았다. 나도 어디 가서 오지랖 좀 부리고, 괜히 아는 척도 좀 해보고 이런저런 사람 다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돌이켜 보니 되려 어릴 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땐 그게 낯가리는 건지도 몰랐고, 시대상 남자가 낯가리는 건 좋지 않은 행위라 여겨졌던 터라 나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속이기도 했으니까.


이제야 내가 낯가리는 사람이란 걸 너무나 잘 알게 됐는데, 모를 때는 스트레스받던 것이 되려 알고 나니 편해졌다. 괜히 스스로에게 스트레스 안 줘도 된다. 나는 낯을 가리는 사람이니까. 눈치 좀 보지 뭐. 그렇다고 내가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예전에 받았던 오해는 정확히 낯가림 때문은 아니지만, 비슷한 류의 오해가 생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쨌거나 그런 오해라면 오해로 남아도 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유모를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내가 낯을 정말 심하게 가려서 밖에 나가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조차 갈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말 거는 것이 어색하고, 초면인 사람을 독대하는 걸 좀 어려워하는 정도라 삶에 지장이 있지는 않다. 단지 낯가림 없는 사람을 선망했던 만큼, 낯가리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을 때 내가 부끄러운 정도였을 뿐.


대부분의 성격이나 감정들은 환경이 변하면,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고 하지만 영영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견디는 능력이 좋아진 것을 착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반대였나 보다. 어릴 적엔 스트레스받는 줄도 모르고 응차 견뎌야 하는 일인 줄로만 알다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깨닫고 당연하게 낯을 가리게 됐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망하지 않는데, 낯 가린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피해를 보는 것도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선 되려 더 흥미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굳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어울릴 필요가 없다. 내가 낯을 가리든 말든, 상대가 낯을 가리든 말든 어울릴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서로 낯을 가린다고 해서 친분을 쌓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만날 사람끼리는 만나게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좋은 사람끼리, 나쁜 사람끼리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저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일 뿐.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 죽어서도 완벽한 자신을 알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나마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니 단점이라 생각한 것도 단점이 아니게 됐다.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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