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기 Jul 06. 2022

공감보다 질문이 낫기도 하다

마흔 즈음에

30대 중반을 거치며 나는 삶의 목표나 가치관에 아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남자는 길바닥의 거지와도 친해질 줄 알아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사상이 깊게 박혔던 지라, 나는 누구에게나 호인으로 보여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했고, 누구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해보려는 행동이 그중에 하나인 줄 알았다. 한데, 친해질 줄 아는 것, 호인, 좋은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걸 거의 40에 다달해서야 깨달았다. 게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행동조차 착각한 부분이 많았다는 걸 알게됐고.


공감에 대해서는 최근에서야 더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타인의 감정은 말을 발화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공감하겠다고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려는 행동이 강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은 사람이기 위해 누구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던 행동은 멍청한 일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강압적인 행동이 되기도 한 것이다. 강압적이라는 건, 상대는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 괜한 공감이 상대를 더 나쁘게 몰고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본인의 마음을 스스로 더 잘 알고 있다는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 심리상담사는 상담자와 감정을 공유하면 안 된다고 들었다.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상대를 분석하거나 판단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설프게 공감한답시고 상대를 더 나쁜 상태로 몰고갈 수 있다. 상대는 전혀 나쁜 상태가 아닌데, 나쁜 상태여야 하는 건가라는 착각을 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괜한 공감은 쓸데없는 말을 낳기도 하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상대를 되려 미안하게 하기도 한다. 그냥 공감해도 되는 상황,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분하는 건 센스에 맡겨야 하는 일이겠지만 대개의 경우 질문이 나을 수 있다. 세심한 질문이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을때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했던 적도 있다. 그게 위로보단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위로도 그저 있어주는 것도 아닌 질문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