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마흔 쯤이면 누구나 그 사이좋은 조건 한 번을 제시받아 봤을 거다. 결정을 위한 고민과 갈등 방식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선택지는 결국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다. 일단 나는 아니오 쪽이었는데, 좋은 제안이었음에도 선택하지 않았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10년에 가까운 인생을 밑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살았다. 하고 싶었던 건 분야를 막론하고 덤벼들었고, 나름 재주가 좋았던 터라 다행히 너저분하지 않은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다.
능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기획안이나 계획서를 작성한다는 일은 단순히 보자면 그냥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내용은 매번 다른 내용이니, 따지자면 매번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목표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벌리는 대부분의 일들이 기존에 하던 일과 차이가 없었다. 목표를 위한 방향성과 타당성을 제시한다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러니 다양한 부분에서 내가 가진 기획력이 꽤나 유용했다.
그렇게 나는 10년을 보냈다. 이것저것 다 찍어 먹어보고, 별에 별것을 다 문서로 작성해 냈다. 여기서 별에 별것을 다 작성한 것은 내 능력인데, 그것을 버텨내고 적어낸 것은 경력이다. 능력은 선천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부분은 재능에 속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경력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고, 몰라도 될 것들까지도 알게 되는 것이다. 재능은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지만, 경력은 버텨야 할 일이다.
나는 특정 분야에 대한 경력이 부족한 것이 매번 아쉬웠다. 한 곳에 오래 못 있는 성향이라 매번 새로운 것을 쫓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곤 하는데, 긴 시간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내가 너무 나의 가능성만을 쫓은 건 아닐까 라며 자책을 하기도 한다. 잘하네, 잘하니까, 잘할 거야, 기대된다. 따위의 말들이 나를 매번 기회의 인간으로 남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아니면 나는 이미 충분히 숙달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눈에 띄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나에겐 특정 분야의 경력이 부족하다.
여태껏 쌓아온 능력을 발휘할 시기는 이제 고작 10년 정도일 거다. 그리고 그다음 10년은 지금부터 내가 다시 쌓아야 할 경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겠지. 그러니 이제는 능력에 그치지 말고 가능성에 머물지 말고, 굳이 몰라도 될 것까지 받아내며 경력을 쌓아나가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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